▲46년 전 강성리 처음 들어올 때 새색시를 반겨주었던 수령250년 된 팽나무 앞에 선 김형애 여사

선모초(仙母草)라 불리우는 ‘가을의 신사 꽃, 구절초'.
흰 꽃잎이 신선(神仙)보다 더 돋보인다 하여 붙여진 또 다른 명칭인 구절초는 여름에는 마디가 다섯 마디이지만 가을이면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하여 구절초라고 불린다는 설도 있고,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에 채취한다고 해서 구절초라는 이름을 달았다는 말도 있다.
'어머니의 사랑, 순수의 상징'이 꽃말인 구절초는, 사람 마음을 순화시키는, 매력 있는 편안한 꽃이다.

김형애 여사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사무실에 돌아와 기사원고 작성하려는데, 문득 강성리 떠나올 때 보았던 구절초가 떠올랐다.

■‘구절초 닮은 여인 김형애 여사’

이렇게 표현해도 전혀 과(過)할 거 같지 않은 김여사의 이양 강성리와의 인연은, 1967년도 김여사가 동갑내기 남편(현재 전남도의회 양경수의원)을 만나 화순으로 시집오면서 시작된다.

의사(醫師)인 친정부친 아래에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하며 공부 밖에 모르던 21세 약학도(藥學徒)가, 후손(後孫)이 급한 시댁사정으로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결혼하여 강성마을로 들어왔을 때 마을사람들은 모두 한 달도 못살고 떠날 거라 수근 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린 새댁은 46년 이란 세월을 강성리 마을에서 시어르신들 봉양하면서 아이들 낳고, 키웠으며, 손자손녀를 본 지금까지, 오늘도 우사(牛舍)에서 소들을 돌보고 농사일 병행하며 순하게 살아가고 있다.

▲김여사를 닮은 구절초

■속 깊던 어린 새댁

김여사는 시집오기 전 집안 살림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터라 시부모 모시는 시골살림살이에 익숙치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모든 일들이 손에 익을 무렵부터는 시부모도 극진히 모셨는데, 때가 되니 모두 먼저 돌아가셔서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 남아 있다고.

특히, 며느리 김여사에게 온갖 정성을 다한 시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김여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김여사의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들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닭이 갓 낳은 달걀을 식지 않게 품안에 소중히 품고 있다가 며느리에게 건네곤 했다고. 당시 영양식이나 간식이 없던 시절 시아버지의 며느리에 대한 귀한 마음표현이리라.

그런가 하면 아궁이 불 지피는 며느리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땔감을 30cm 정도 길이로 잘라 몇 묶음씩 준비해두고 다른 사람들은 사용 못하게 하였으며, 화장지가 없던 시절 주로 신문지를 사용하는데 김여사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위해 어디선가 하얀 종이를 구해와 정사각형으로 잘라 화장실에 걸어두곤 했다한다.

그 은혜를 내내 기억하면서 살던 김여사는, 노년에 노환으로 걸음걸이가 불편해진 시아버지를 위해 (당시는 휠체어가 없던 시절) 리어카를 구입하여,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시아버지를 앉혀, 앞에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뒤에서는 김여사가, 리어카를 끌고 밀면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틀에 한 번씩 마을 산책하며 바람 쏘여 드렸다 한다.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마음이 훈훈해지는 구부(舅婦,시아버지와 며느리)간 이야기이다.

▲김여사와 시아버지 추억을 담고 흐르는 개울...잔잔한 물흐름이 메밀 처럼 보인다.

■‘부부란 하늘이 맺어주는 것’

나이만큼 늙어가는 모습이 정상이고 주름살 속에 새겨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여사.

약학을 전공했지만 학창시절엔 문예부장을 맡기도 했던 김여사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농법’단지라 벼멸구로 인해 부분적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한 논을 가리키면서 펄 벅(Pearl S. Buck)의 ‘대지(The Good Earth)’가 생각나지 않느냐고 기자에게 질문하는 김여사.

아마도 자연에 대해 무한한 경외심(敬畏心)을 가지는 김여사의 마음에 자연의 힘 앞에서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깨달아서였는지도. 그래서인지 김여사는 농촌에 살다보니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인간의 삶이, 길바닥에 피어났다가 지고나면 내년에 다시 또 피는 풀꽃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농사와 소 돌보는 일에 묻혀 살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중에도 詩적인 어휘구사와 논리적인 대화법으로 김여사는 내재되어있는 지적능력과 감성을 섬광처럼 노출시킨다.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약학도의 길과 문학소녀의 꿈도 포기한 채, 강성리에서 청춘과 노년을 보내고 있는 김여사는, 고생스러웠던 젊은 날 이었지만 후회 없이 행복한 추억이라고 말하며 ‘인간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게 가장 잘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고.

또한, 효자(孝子)이고 올곧은 성격의 남편을 언제나 존경하며 ‘죽어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남편을 만나 살 것’이라며 ‘부부는 하늘이 맺어주는 것’이라 말한다.

▲호박꽃이 저절로 피는줄 알았는데...

▲이 수술위에 벌이 숫호박꽃가루를 묻혀,,,

▲호박꽃을 피운다고..누가 못생김을 호박꽃에 비유했는가?,,이렇게 해맑은 얼굴로 미소짓는 고운 꽃을..

■‘농사’는 ‘종합예술’

중·고 시절 내내 1등을 놓칠까봐 공부만 열중한, 학구파였던, 김여사는 농촌에 살다보니 농사가 공부하는 거 보다 더 어렵다는 걸 체득했고, 농사는 힘만 있다고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김여사는, 요즘 농사는 ‘복합영농(複合營農)’이라 ‘종합예술’이라 생각한다며, 농법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시행착오 겪으면서 경험을 쌓아야 하고, 실제로도 경험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농촌의 삶이 노력의 댓가가 있어야 하는데 자연재해나 가격폭락 등으로 소득 면에서 굴곡이 심하다며 큰 욕심 안 부리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마음에 상처 없이 살 수 있다고.

▲벼멸구 피해를 입은 논

▲마을정자에서 바라본 강성리 하늘

■고귀한 인연인 이웃들과 함께 여생을 ...

소120두 기르며 농사병행 하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김여사는 “땀 흘리지 않고 노력 없이 얻는 대가는 없다. 힘들어도 사표 낼 일 없고 명예퇴직 없어 마음 편하다”며 소박하게 웃는다.

그리고 아침 해가 뜨면 대하게 되는 이웃들을, 매일 볼 수 없는 부모형제보다 고귀한 인연으로 여기면서 남은 삶 함께 건강하게 살고, 시간이 허락하면 소녀시절 꿈이었던 글도 다시 쓰고 싶다한다.

인터뷰 하는 날이 미국에 있는 조카결혼식인데 소를 돌보아야하기 때문에 못 갔다는 김여사는 “주어진 현실이 가장 중요하다.”며 언제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라고.

눈앞으로 고개 숙인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는 탁 트인 들판을 바라보며,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이 스쳐가는 마을정자에 앉아 김여사와 대화 하노라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고, 좋은 장소에서 좋은 이와 대화하는 그 시간들이 기자에게는 인터뷰가 아니고 무릉도원에서 신선놀음 한 거처럼 느껴졌다.

김형애 여사님! 항상 건강하세요!

▲김여사네 우사(牛舍)

▲김여사네 농장표지판

김형애여사:010.5252.7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