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뿌연한 하늘빛이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인연에 순응하며 화순에 둥지 틀고 있는 정찬주 소설가를 만나기 위해, 화순의 끝자락 이양면 증리 소재 이불재(耳佛齋)를 찾았다.
사립문까지 마중 나온 정찬주 작가와 첫인사를 나누고 그 유명한 이불재로 들어서, 작가가 따라주는 따끈한 보이차(普洱茶)를 마시면서 작가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인간 정찬주

보성복내 에서 태어난 작가는 100일이 좀 넘을 때 아버지를 따라 제주로 갔다. 당시는 6.25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때라 피난 간 것이었다. 그렇게 제주에서 살다가 4살 되던 해 부산으로 가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공무원이던 아버지 새로운 부임지인 광주로 와서 초등학교에 입학, 고등학교 까지 광주에서 생활하고, 대학시절 이 후부터는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고향은 전라도 이지만, 작가의 인생여정이 타지(他地)에서 보낸 시절이 더 길어서인지 작가의 말투는 전라도 억양이 거의 없고, 느려서 충청도가 고향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소설가 정찬주

■30년 서울생활 청산하고 화순쌍봉으로,,

작가는 50세 되던 해인 2001년 ‘화순 땅에 내 뼈를 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화순 쌍봉으로 낙향 했다고 한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몇 차례 인도여행에서 인도 상류층인 브라만 계급들이 남자나이 50세가 되면 숲으로 들어가 일정기간 자연을 알고 정진하는 풍습인 임간기(林間期)가 부러워서였다. 화순 쌍봉은 양씨와 정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로 작가의 고조(高祖)대 까지 살았고 고조 이 후, 보성 복내로 이주했다고 한다.

■화순쌍봉사와 작가의 인연

작가의 할머니가 고향 보성 복내 에서 쌀을 이고 가 불공드리던 절이기도 한 쌍봉사를, 작가는 대학시절 소설 쓰기 위해 수시로 찾았다. 당시 쇠락한 사찰이던 쌍봉사 주지스님이 길게는 한 달씩 그에게 숙식을 제공해주었다. 그는 스님의 은혜를 마음에 새기며 나중에 빚을 갚겠다고 다짐했는데, 대학 4학년 되던 해 그 스님으로부터 '나 이제 생사를 끝낸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는 오언절구(五言絶句) 한시(漢詩)가 쓰인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작가는 스님이 절을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고만 생각했는데, 1년 지난 뒤,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던 작가는 스님이 강화도 절벽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 때 마침 조계종이 월간 ‘불교사상’을 출간한다고 하여, 작가는 불교와 쌍봉사 주지스님에게 진 묵은빚을 갚을 기회라 여기고 81년 ‘불교사상’에 입사하여 3년 동안 잡지 만들고 경전 읽으면서 불교 공부에 심취하게 된다.

▲화순쌍봉사

■법정스님과 작가와의 각별한 친분

작가는 1984년부터 출판사 샘터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법정스님의 책 10여 권을 만든 인연으로 계(戒)를 받고 재가(在家)제자가 됐다. 법정스님은 생전에 작가를 찾을 때, ‘가정방문’간다고 연락하고 오셨으며, 농사도 짓는 작가에게 "많이 짓지 마라, 글 쓰는 일과 본말(本末)이 바뀐다"고 말씀하셨다. 법정스님은 작가의 집 사랑채 편액(扁額)도 써 주고, 추운 겨울에 입으라며 내복도 보내 주곤 했다한다. 작가는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소설 무소유’를 출간해 출판계가 불황 중인데도 20만부가 팔리는 호황을 누렸다.



■전라도 출신 작가의 ‘정체성’을 찾아,,

작가는 화순에 내려오자마자 처음 ‘전라도닷컴(전라도 사투리로 만든 잡지)’을 정기구독 신청하고, 전라도 방언사전인 ‘전남방언사전’을 구입하여 틈나는 대로 탐독하였다. 이유는 전라도에서 태어난 작가로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해 소설을 쓰는 게 전라도출신 작가로서 보람이고 정체성을 찾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연꽃이 진흙 속에서도 청정한 꽃을 피우듯, 세상에 살 되 물들지 말라’는 의미로 작가에게 ‘무염(無染)’이라는 법명(法名)을 지어준 법정(法頂)스님이 “박경리씨가 토지(土地)를 경상도 사투리 사용해 썼듯이, 무염거사도 전라도 사투리로 소설을 한 번 써보라”고 권유할 때 영감(靈感)을 얻었다 한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소설 ‘다산(茶山)의 사랑’은,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 기념 작품으로, 인간 정약용에 주목하여 그와 주변 인물들의 굴곡진 삶을 조명하면서 정약용의 번민과 고뇌, 인간적인 고독을 전라도 사투리로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려냈다.

다산은 부친 정재원이 화순현감(縣監) 재직 시 화순에서 2년 여 간 살았다. 당시 15세였던 다산은 화순에 머물면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비롯한 여러 서적을 깊이 있게 배우면서 다산 생애 최고의 독서량을 자랑하였고, 이 시절 이치와 원리를 따져가며 연구하고 공부한 결과는 훗날 강진 유배시절 500여권 책을 저술하게 된 모태(母胎)가 되었다. ‘다산의 사랑’은 2012년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선정에서 문학부문 82권 우수도서 중 최우수도서로 선정되어 전국공공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데, 작가는 화순(和順)과 다산(茶山)이 관련이 있다는 걸 전국에 알리는 파급효과를 갖게 된 데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화순이양에 대한 작가의 애정

작가는 자신의 돈을 들여 '화순'에 집을 지었지만 그건 '화순'이란 지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화순 역사를 공부해서, 화순 역사를 소재로, 화순역사소설을 쓰는 것이 작가로서 화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禮儀) 내지 선물(膳物)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마음의 발로(發露)에서 매주 50매씩 한 주로 거르지 않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3권(卷) 분량 대하소설 ‘하늘의 도(道)’를 저술하여 화순군 홈페이지와 프레시안(Pressian)에 동시 연재, 호평을 받았다. 그 때부터 작가가 살고 있는 집 ‘이불재(耳佛齋)’는 전국명소가 되었는데 작가는 화순을 위해서 역사소설을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작가자신을 전국에 알리는 소설이 되었다며 ‘사심(私心)’을 버렸을 때 더 큰 것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또한 작가는 작년 2012년도 ‘다산의 사랑’, ‘하늘의 도’로 화순을 전국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자랑스런 이양‧청풍인상’을 수상했는데, 상을 받은 이 후로 오일장날 장에 나가면 면민들이 작가를 알아보고 절을 한다며, 작가 자신이 이제서야 비로소 ‘이양면민'이 된 거 같아 무척 기쁘다고 말한다.



■작가의 2013년도 포부

작가는 작가의 책과 글로서 화순군을 전국에 알리는 게 작가의 몫이라고 한다. 작가자신이 사랑하는 화순에 기여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항상 뇌리에 각인 되어있고, 책을 편찬할 때 작가소개를 하는 것도 화순홍보를 염두에 두고 한다고 한다. 덧붙여 서은 문병란 선생처럼 훌륭한 시인이 화순출신이라는 자체만으로도 화순군의 품격과 브랜드가치를 높여주고 있는 거라면서 공무원들이 훌륭한 문학인들 가치를 재인식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작가는, 이미 출간된 ‘하늘의 道’를, 올해, 현재 3권인 것을 4권으로 분권하고, 제목이 난해 하다고 하여 ‘나는 조선의 선비다’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재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화순의 누(樓)․정(亭)문화가 담양보다 아름답고 훌륭한데 군(郡)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아 뒤지고 있다며 누․ 정 문화에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이불재’에서 화순사랑 구현(具顯)하는 소설가 정찬주

‘솔바람에 귀를 씻어 佛(=진리)을 이루리’ 의미를 갖는 작가의 집 ‘이불재’는, 이제 작가의 개인적 주거공간이 아닌 공적인 주거공간으로 바뀌었다. 작가는 ‘이불재’를 방문하는 내방객들이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 대문을 소박한 사립문으로 만들고, 정겨운 낮은 돌담도 만들었다.

진정한 사랑은 실천하는데서 의미를 찾는다.
자신의 명성(名聲)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집필활동 하면서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잔잔하게 펼쳐 가고 있는 소설가 정찬주.

작가가 이루고자하는 모든 계획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정찬주:010.5381.3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