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영 우체국장

어릴 적 나에게 우체국은 기대와 설렘이었다. 길가에 외로이 서 있는 우체통과 시골 길을 달려가는 우체부(집배원)의 빨간 자전거로 상징되던 우체국. 미지의 세상으로부터 금방 찾아올 것 같은 낯선 소인이 찍힌 편지, 멀리 떠난 친구가 다시 돌아온다는 반가운 내용이 담긴 전보가 나를 기다리게 하고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어째 하필 우체국이냐 .”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19세, 약관의 이홍영 국장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가슴 뛰는 신규 발령을 받던 날 주위 어른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다. 수입이 많지 않고 이른바 비권력 기관이라 살기 팍팍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해주신 것이라고 한다. 목포우체국 근무를 시작으로 신안군 가거도, 체신청(현 우정청), 고흥, 광주, 순천, 강진을 거쳐 화순우체국장으로 부임한 것이 3년 전이었다.
이러한 역정 속에서 이홍영 국장은 주경야독으로 대학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과정을 마쳐 학위 취득 후 곧바로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는 영광을 안았다. 영광과 함께 시련 또한 적지 않았다. 감사관실에 있을 때 망막에 심한 손상이 발견되어 실명까지 가는 위기에서 큰 수술을 받았으며 또, 한쪽 팔이 절단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여 상체 전체를 깁스한 채 병원에서 3개월, 출근길에 갑자기 급 후진하는 차량에 받쳐 무릎을 심하게 다치고 다시 병원 신세를 졌다.

광주·전남우정 100년사 발간
한편 나주우체사 개국 100주년을 기념하여 ‘광주·전남 우정 100년사’를 펴는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게 된 이홍영 국장은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대학 도서관의 자료실을 뒤지고 우정박물관과 도청 등 행정기관자료실의 먼지를 털어내며 사료를 발굴·조사하는 한편 전문가와 관계자를 찾아 나서는 등 방대한 우정사 편찬사업에 들어갔다.
혼자서 진행하던 집필 작업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작업 막바지에 이르러 교정 작업 중 과로로 쓰러지고 말았다.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다되어 가는 편찬 작업을 도저히 중단할 수는 없었던 이홍영 국장은 오른쪽 팔과 다리의 마비 증상으로 몸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임에도 병상에서 우정사 교정 작업을 끝냈고 그 해 말 “광주·전남 우정 100년사”를 발간하였다. 집필을 시작한 지 세 해 만에 지방 우정청에서 최초로 우정사를 펴낸 것이다.
그래서 600여 쪽에 이르는 광주·전남 우정 백년사가 탄생하였고, 우정총국 이래 현재까지 우정 120여 년의 흐름을 정보화라는 시각에서 조명한 박사학위 논문이 완성될 수 있었다.

공직 기간 41년, 대학 강단에서 20년 세월
그 이듬해 총괄국장이 된 이홍영 국장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야간에는 대학 강의를 하는 겸임교수직을 맡고 있다. 인생의 고비 고비에서 웃고 우는 과정을 겪으면서 41년이라는 공직 기간과 더불어 대학 강단에서의 20년 세월이 흘러 어느덧 정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귀가 순해져 용서하는 마음이 깊어진다는 나이. 회한도, 노욕도, 아집도 다 내려놓고, 새로운 세대가 뒤를 잇고 있으니,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요 인생의 철칙이다. 우정사업의 주역이던 이홍영 국장은 영광과 환희의 화려했던 날 그리고 역경과 시련의 어두웠던 날을 회상하며 후배들에게 ‘현재를 즐기고, 현실에서 이루라’는 당부를 한다.

우체국에 들어와 결혼했고, 태어난 애들은 성장했으며, 그 곱던 배우자도 나이 들었다. 우정사의 뒤안길로 떠나는 이홍영 국장의 삶의 굽이마다 희망의 끈을 붙들게 한 힘은 사랑하는 아내의 소리 없는 내조였다. 영광과 환희, 역경과 시련의 날을 보낸 이홍영 국장은 ‘비우고 내려놓기’를 마음에 새기며 새로운 삶을 향해 힘찬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이홍영 화순우체국장
호남대 겸임교수
H.P: 010-9658-0707

▲ 삶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이홍영 우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