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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시험에 합격, 개천에서 용 났다>
그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이서면으로 발령받자 주변에서는 개천에서 용 났다며 좋아들 했다. 당시 이서면에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밖에 없었고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려면 광주로 가야 했다. 버스를 타도 4시간이 걸렸다고.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서관에서 일하던 시절, 광주일고에 다니던 학생이 자신을 무시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신문팔이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그때 시험번호가 27번, 그래서 그는 어느 숫자보다 27이라는 숫자를 제일 좋아한다.
<밤에야 간신히 책상에 앉을 수 있던 시절>
너도나도 어려웠던 그시절, 공무원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논으로 밭으로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운력’이라는 이름의 공동작업도 많았다.
그야말로 몸으로 일했던 시절, 낮이면 농민들을 지도하고 밤이 돼야 책상머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밀린 서류정리는 촛불을 켜고 했다. 지금 그렇게 일하라면 과연 누가 그렇게 일할 수 있을까 싶다고. 그당시 이서면에서 근무하던 직원만도 25~26명에 달했다. 면민들도 5천여명이 넘었다.
이민기씨는 그 많던 직원들도 절반으로 줄었고 면민들도 1천여명 안팎으로 줄었지만 곳곳에 자신이 젊음을 바쳐 일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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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직원이 면장이 되면 4년후 퇴직해야 했던 그때>
화순군청 실과소장이나 면사무소의 면장은 직급이 같다. 계장들도 마찬가지. 지금은 군청에서 면으로, 면에서 군청으로 인사교류가 이뤄지지만 1997년 이전에는 면에서 근무하는 6급이상 직원들은 군청으로의 인사이동이 불가능했다.
면장도 별정직이어서 행정경험이 없는 민간인도 면장이 될 수 있었다. 물론 6급계장도 5급 면장이 될 수 있었지만 면장이 되면 4년후에는 퇴직해야 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면사무소 직원이 군청에서 근무하려면 전입시험을 치뤄야 했다. 지금은 이런 불합리가 없어져 다행이라고 할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자부>
이민기씨는 자신이 화순군의 최연소 계장일 것이라고 말한다. 공직에 발을 디딘지 9년만에 계장이 됐고 공로연수에 들어갈때까지 28년간 계장자리를 지켰다. 이서면에 근무하다가 2002년 2월부터 농산과로 발령받아 군청근무를 시작하면서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한다.
농산물의 판로확보만이 농업과 농촌이 살길 이라며 도농자매결연을 추진해 1년에 26차례에 걸쳐 홍보활동을 벌여 17억원 상당의 농산물을 판매하기도 했다. 재무과로 가서는 지방세 체납액 줄이기에 전력을 기울여 화순군의 지방세징수실적을 21위에서 10위권으로 끌어 올렸다.
<이제는 나와 가족을 위해 살고 싶다>
6월말 퇴직을 앞두고 공로연수 중인 그지만 끝내 사무관이 되어보지 못하고 퇴직하게 된데 대해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부인 신경숙 여사는 “이제는 이런 저런 일들은 잊고 푹 쉬라”고 말하지만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일했던 직장을 떠나는 일이 어찌 그리 쉬울까.
이민기씨는 지난 3월 자동차사고를 당해 한달여간 병원에 입원했다. 지금도 통원치료중이다. 병원에 있으면서 그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동안 일을 한답시고 자신과 가족을 너무 돌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이씨. 이제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살기로 했다.
<산하농장에서 나눔을 실천하며>
요즘 그는 화순문화원에서 풍물패로 활동한다. 지역에 행사가 있으면 회원들과 함께 언제든지 달려가 풍물을 두드린다.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를 통해 사회에 봉사하기 원하는 사람들과 뜻을 모아 노래사랑모임도 만들었다.
이서면 야사리 그의 집 뒤편에 2천주의 백일홍과 200주의 매화나무를 심고 '산하농장'도 만들고 있다. 그동안 부인이 혼자 가꿔왔던 5ha에 달하는 밤나무밭도 산하농장의 한 부분이다. 유황먹인 3천수의 닭을 키우고 있는 그는 1만8천여평의 방목장에 흑염소도 키우려고 준비 중이다.
산하농장은 누구나 부담없이 찾아와 즐길 수 있는 체험학습장으로 가꾸려고 한다. 지나가는 길에 들러 매실도 따고 밤도 따고 유황닭도 먹고 저수지 상류 작은 쉼터에서 자연을 느끼고 노래방시설이 갖춰진 황토방에서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 곳에서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과 가족을 돌보며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박미경 기자 mkp03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