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남보건진료소에서만 25년간을 근무하며 앵남골이 고향보다 더 고향같다는 최희순 소장.

최희순 화순보건소 앵남진료소장은 앵남진료소에서만 25년을 근무했다. 주민들에게 그녀는 한동네사람과 같다. 아니 한동네사람이다.

그녀는 1983년 앵남진료소에서의 근무를 시작했다. 25년간을 앵남골에서 근무하면서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다 알게 됐다.

최희순 소장은 처음 진료소 근무를 시작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근무여건이 참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변변한 진료소도 없어 마을회관 한쪽에 약품 등을 놓아두고 진료소겸 사택으로 썼다. 전화도 마을에 딱 한대 있던 시절이었다.

광주에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주말에만 만나기를 1년여, 앵남역 옆에 진료소와 사택이 지어지면서 그녀는 비로소 가족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직장이 광주에 있어 화순으로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그녀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자신을 배려해준 남편에게 그녀는 너무나 고맙다고 한다. 일을 한다는 이유로 학교소풍이나 운동회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어도 착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도 늘 고맙다.

그녀가 처음 근무하던 당시는 병원이 흔하지 않아 보건진료소에서 분만까지 한 탓에 지금 스물대여섯살 된 웬만한 동네 처녀총각들은 거의 다 그녀의 손을 거쳐 태어났다. 둘째아이가 두 살 무렵이었던가 지금은 없어진 앵남초교에 수두가 유행하면서 전교생의 몸에 돋아난 물집을 짜내며 치료해준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최희순 소장은 앵남골 주민들의 조언자요 중재자다. 주민들은 그녀를 믿고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가정사며 온갖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털어놓는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주민들이 그만큼 그녀를 믿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앵남초교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전남학숙이 들어서자 전남학숙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열자고 제안한 것도 그녀였다. 하지만 해마다 경로잔치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수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누구보다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광양이 고향인 그녀에게 앵남골은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곳이다. 주민들은 그녀가 앵남골에 머물길 원하지만 그녀가 진료소를 떠난 후 후임에게 누가 될까봐 차마 앵남골에서는 자리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녀.

지금 그녀는 주민 한사람 한사람의 성격과 지병, 병력까지 속속들이 다 아는 앵남골에서 앵남골 주민으로 살다가 2년후 차분하게 정년퇴직을 맞고 싶은 작은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