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구나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을 민중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고, 독립을 향한 열망을 퇴색시켰던 것이 당시의 지식이들, 일부 전향한 조선인 지도인사들의 행보였다.

하지만 더욱 우려되었던 것은 현장에서 자라나는 후진들을 양성해내는 교육기관에서 식민지형 인간을 배출해내는 교육이 교묘하고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점이다. 국내나 국외 어디를 돌아봐도 독립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이나 희망을 찾아낼 수 없었던, 이제 조선은 영원히 일제의 속국으로 전락해버릴 것 같은 암울한 현실에서 일제의 속박은 일반 백성의 일상생활에도 마수를 뻗혀 조선인이 단독으로 뜻을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 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한 지방에서 지방민들이 의기투합하여 감히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에 맞섰으니 이는 가히 ‘혁명적’ 이라고 표현할 만한 사건이었다. 1922년 2월 2일 고창에서 열린 군민대회에 약 5천5백 명의 고창군민들이 모인 것이다. 이들은 성금을 모금해 그해 5월 4일 5년제 남자 중고등과정인 ‘고창고등보통학교’를 개교하기에 이른다. 모름지기 우리나라 교육사에 나아가 식민지사에 길이 남을 일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 뒤에는 매하(梅河) 양태승(梁泰承)이라는 선각자가 있었으니, 오늘 우리는 교육의 수호자였으며, 민족정신의 계승자인 매하 선생의 고매한 정신을 그리워해보고자 한다.

매하선생은 조선(朝鮮) 중종(中宗)대 대표적인 문인이자 화가인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15대 손으로 1889년 1월 10일 화순(和順) 도곡면 월곡리에서 아버지 회규(會奎)와 어머니 여흥 민시 슬하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세계 각국의 열강들이 조선 땅에 발을 붙이고 서서히 이권을 도모하는 참담한 정세를 관망하였던 매하는 고향땅에서 전통적인 한학(漢學)공부에만 매달려서는 작금의 현세에 대처할 수 없음을 깨닫고 신학문을 접하기 위해 나이 20세에 서울로 향한다.

일본, 러시아, 청으로부터 나라의 존망이 크게 위협받던 당시 서울에서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신지식인 유길준(兪吉濬)이 뜻을 같이한 몇몇 인사들과 함께 조선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융희학교(隆熙學校)를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