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할아버지는 이승만을 매우 싫어하셨지만, 반공포로 석방을 결정했을 때는 이승만을 칭찬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토지는 유상몰수를 통해 국유화해야 한다’ 하시면서도, 공산주의에는 반대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유심론자셨지 때문에 유물론자인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때 좌우 이념대립이 심대하여 우리 사랑방에서도 격론이 벌어지곤 했는데, 할아버님 말씀이 ‘공산주의자는 고귀한 인간의 존엄성을 일개의 기계나 물체시하고 관렴을 배척한다는 명분으로 종교를 말살하고 원대한 정신의 세계를 도외시하고 눈앞의 물질만을 논하는 자들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의 세계는 사슴을 말이라고 하면 무조건 믿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용납이 안 된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는 것이 아니며 사슴은 사슴이고 말은 말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 세계에 공산혁명이 이루어지면 각 국가는 자연히 소멸되고 전 세계가 소비에트 연방국이 되고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야말로 관념을 배척해야 한다고 부르짖던 자신들 스스로 관념에 빠진 꼴이다’고 비판하셨습니다. 또한 공산주의는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누르고, 분배를 독점하기 때문에 강제노동, 생산의욕의 저하, 분배의 불균등 문제로 인하여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는 독재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는 물질도 중요하지만 원대한 정신세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미군정에 대한 평가,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매하의 주장을 되새겨보면 당시의 시대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 판단할 때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아가 세계를 양극화 시킨 이데올로기이며 해방 전후 한국에서 새로운 대안의 하나로 떠오르던 공산주의에 대한 매하의 식견은 정확한 부분이 많았다. 매하가 자신이 발붙이고 있던 시대를 뛰어넘는 안목을 갖추고 있었음은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민족’을 가장 상위 개념으로 놓아둔 세계관으로서만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이념과 사상을 매개로 좌우로 갈라져 있던 당대의 지도층들에게 진정으로 충고하고 싶은 매하의 시대정신이었을 것이다. 매하는 당시 젊은 사람들에게 교훈처럼 말씀하셨다.

"사람은 항상 자기의 행동과 처사를 마음의 거울을 찾아 비추고 반성하라.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