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매하는 “상탁불하정(上濁不下淨)인데, 내가 그 ‘흐림(濁)’을 받아서 道政을 수행함은 나의 本意가 아니다. 만약 취임하여 그 ‘흐림(濁)’을 받아 행하게 되면 많은 인민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니, 위정자로서 인민을 희생시키는 정치를 할 수 없는 것이오. 그렇다고 내가 독단적으로 내 본의대로 도정을 수행한다면 그 肅命이 길지 못할 것이다. 사정이 이럴 바인데, 내가 어찌 그러한 자리에 취임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거절의 이유를 분명히 하였다. 도리어 “김성수 자네가 부통령직을 사퇴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심부름 온 사람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실제로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김성수가 부통령직을 사임하였으니, 매하의 깊은 뜻이 인촌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았던 듯싶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나서서 세상을 구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하의 민족교육자로서 공도 있고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으니, 예우 차원에서라도 적당한 자리를 받아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매하는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해방정국을 객관적 시각으로 돌이켜볼 수 있는 오늘에 비추어 보면 매하의 판단은 대단한 탁견이었다.

당시 양태승 선생과 한방을 쓰면서 할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늘 곁에서 지켜보았던 손자 양형렬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 했다.

“날이면 날마다 그런 권요를 하러 밀려드는 사람들이 그 깊은 산골마을에 끊이지 않았습니다. 가족들도 마음을 조이며 그분의 태도만을 살폈지요. 한편으로는 제발이 지긋지긋한 산골생활을 총산하고 서울에서 좋은 학교 다니며 생활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오히려 인촌이 보낸 사람에게 “인촌도 그런 식으로 이승만 밑에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를 하며 되돌려 보내곤 했습니다. 그대 제 소견으로는 그렇게 좋은 자리를 왜 거절하는지 납득이 안 갈 때가 많았습니다.”

조국이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강대국의 손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민족 내부는 이념과 파벌로 갈등을 겪고 있을 때, 매하는 보은농고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생의 마지막 공직을 담당하고 있었다. 짧은 정치생활을 끝내자마자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은 충청북도 주요 인사들로부터 지역교육을 맡아달라는 오래된 요청을 더 이상 모른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부단한 세월 동안 준비해왔던 포부를 정계에서 펼치지는 못했지만, 그가 직접 목도한 정치인들의 성숙되지 못한 역사인식과 무책임을 통감하고 다시 한 번 준비된 인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매하는 다시 교육계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