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떤 세력도 제대로 된 정치활동을 펴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권을 수립하는 데에는 정치력보다 미군정의 지원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각 정당의 인사들은 미군정과 손이 닿기 위해 노력하였다. 미군정과 손이 닿자면, 그들의 이해관계에 합당한 요건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군정은 무엇보다 원활한 국내통치를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파트너를 우선시하였으니, 각 정당들에게는 민심을 통제할 수 있는 지도력이 요구되었다.

그리하여 일제 강점기 요직에 있었던 권력자들, 든든한 경제력을 갖춘 친일 경력의 지주들에게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경력이 민심을 얻기에는 더할 수 없이 ㅇ치명적이어서 이를 무마해줄 만한 사회적 신망과 민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급 인사를 포섭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시되었다. 당시 신생정당이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던 명망 있는 인사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통로 역할을 했던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깊은 속리산자락에서 이러한 세태를 관망하고 있던 매하를 찾아온 손님들의 속내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당시 우익진영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한민당의 주체들이 매하를 찾아온 것이다. 매하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기였던 한민당 요인들로부터 입당을 권유받았다.

김성수, 백관수, 김병로, 송진우, 김시중 등 한민장의 요인들은 춘강 선생 문하에서 함께 공부했던 오랜 지기들이었으며,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초대 감사원장을 지낸 정인보, 경찰청장을 지낸 조병옥 등도 오래전부터 매하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해방이 되자 이들은 지역의 민심을 얻고 있는 매하를 찾아와 함께 일할 것을 여러 차례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요 안사이며 엘리트들이었으니 이들과 함께라면 새나라 건설에 제대로 된 초석을 쌓을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매하는 상경을 결심한다. 매하는 가족을 속리산에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온 매하는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을 졸업하고 함께 속리산에서 은거했던 큰 사위 임광택을 수행비서 삼아 데리고 다니며 한민당 창당업무에 착수했다. 그러나 정치는 생각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매하가 정례에 발을 들여놓을 결심을 굳혔을 때에는 진정 민중을 위한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정치를 꿈꾸었던 것인데, 실제 정당의 모습은 소수의 가진 자들이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