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돌연 매하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를 이용하여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제의 총알받이가 되게 하려는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의 눈을 피해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삼거리라는 속리산 깊은 산골에 은거하게 된 것이었다. 이미 그의 나이는 57세, 적지 않은 나이였다.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낯선 길에 나서기에는 더더욱 적지 않은 나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들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광주를 떠나 일본인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은거(隱居)하는 일이었다. 은인자중하며 일본은 패망을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을 위해 그런 강연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셨지요. 광주에 있는 재산을 조용하게 정리한 다음 몇 푼의 노잣돈을 마련해 어느 날 갑자기 밤 봇짐을 싸서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삼가리라는 속리산 깊은 산골로 들어가신 겁니다. 저로서는 그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 생각하면 지조를 지키며 그 어려운 시기를 버텨나가기 위해 그 이상 어떤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하의 큰딸 양경자의 회고는 당시 매하가 지녔던 지조와 강직함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알려주고 있다.

매하가 지켜낸 지조와 양심은 결국 우리 민족의 지조와 양심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후손들과 오늘날의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표상이기도 하고 신념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남기지 못했다면 조선의 1945년 8월 15일은 부끄러운 고백들로만 가득 찬 가슴 시린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양태승 선생의 손자 양형렬은 속리산 시절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해방되기 2년 전, 광주에서 생활하실 때 일제가 학도병, 정신대, 보국대로 우리 국민 전부를 끌어가려고 총동원령을 내리고 민족지도자들에게 마이크를 잡게 하고 찬조강연을 강요하고 회유와 협박을 계속하자 어느 날 밤 봇짐을 싸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삼가리로 은거하셨습니다. 그곳에는 논도 없고 밭도 없이 화전민만 사는 곳인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그곳 노인들과 다정하게 지내셨어요. 저녁에 마실나온 노인들이 한 사람씩 집에 돌아갈 때면 그때마다 사리문 밖까지 배웅해주셨습니다.”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마을 노인들과 편안한 일상을 보내면서 여유와 겸손함을 잃지 않는 매하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술회라 하겠다.

당시 매하는 나라 잃은 설움과 가난 속에서 실날같은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마을 노인네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