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일제는 창씨개명과 황국신민화운동을 강제로 시행하였다. 그렇지만 매하는 절대로 일제에 타협할 수 없다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늘 “흥! 창씨를 하다니! 왜놈 성을 쓰다니!” 하면서 비분을 토로하곤 했다.

그것은 함흥 영생고보(永生高普)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장남 동만의 창씨개명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손자의 중학교 입학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남 동만의 교사 취직에 대해서도 교육을 사명으로 알고 평생 헌신 봉사하겠다는 각오가 아닌 생계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면 반대했던 그였기에 아들 동만에게 “조선인 교사가 조선인 학생들을 대하면서 오로지 호구지책을 위하여 창씨개명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매하는 창씨개명을 안하면 중학교 입학을 못하게 될 장남 동만의 아들이자 자신의 장손자 경렬을 향해 “장차 우리 집안을 일으킬 사람이고,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장손자가 학교에 못가는 한이 있더라도 창씨는 못한다.”고 완강하게 반대하면서, “만약 네가 창씨를 할 수 밖에 없다면 호적을 파가라”고 호통을 쳤다. 결국 그 손자는 중학교 입학을 포기해야 했다.

매하는 일제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 민족과 가문의 자존심인 성을 바꾸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지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역사와 민족 앞에 당당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즉, 조선인으로서의 마지막 신분증명과도 같았던 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머리를 자를지언정 상투는 포기할 수 없다고 외쳤던 한말의 유림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한 개인이나 집단의 자존심이 아니라 조선인으로서, 조선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매하의 신념 때문에 그와 그의 가족들이 받아야 했던 고통이 작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하가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은 오늘날 그의 집안에는 자랑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자존심으로 남은 일이 되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하와이를 선전포고도 없이 공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지역으로의 확전을 불러왔다. 준비된 시나리오대로 일본군은 인도차이나와 남태평양 각지의 섬으로 진출했으며 그들의 승리는 끊임없이 국내로 돌아오는 이국적인 물건과 함께 일본과 조선의 지지자들을 도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