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 그의 사업 수완 미숙이 아닌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에게는 한시가 바쁜 순간들이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까지만 해내고 그 이상은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훌훌 다른 일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의기가 있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기성품'이 아닌 자신이기에 '기성화'되는 것을 피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사업이 망하고도 삼대가 먹을 재산은 있다는 오늘날의 기업가들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익히 들어오거나 알아온 기업가는 아니었다. 그보다 큰 뜻이 있었기에 그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또 다른 자신의 일터로 향할 수 있었다.

이처럼 목장이나 양말 공장의 예에서와 같이 매하는 특출한 민족 교육자이긴 했지만 기업가의 체질은 아니었다. 장남인 양동만이 중학교 교사로 취직할 때도 "네가 교육을 사명으로 알고 평생을 헌신 봉사하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모르거니와 직장이 없기 때문에 생계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면 나는 반대한다"라고 했다는 일화에서와 같이 교직을 단순한 직업이 아닌 숭고한 사명으로 여겼다. 그러니 매하에게는 기업가의 길보다는 교육자의 길이 더더욱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1937년 매하가 무등양말의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지천명(知天命)인 50에 들어섰다.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는 50대에 들어선 그의 삶은 이제 그 뜻을 마음껏 펼쳐야 하는 시기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그런 뜻을 저버리고 말았다. 영토팽창에 광분하고 있었던 일제는 사회제도 자체를 군국화 해갔으며 그에 따라 조선 역시 그들의 의도대로 대륙침략의 전진기지로 경영되어 갔던 것이다.

이 무렵 한때 매하와 뜻을 같이했던 인물들은 변절의 길을 걷고 일제에 협력하며 허울뿐인 감투에 감격하고 <황국신민의 서사>를 읊조리며 일본의 승리에 도취해 있었다. 그들은 조선이 일본에 동화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자신이 일본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매하는 그런 일분이 결국에는 파국에 이를 것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일본의 역량을 잘 아는 그였다. 확전(擴戰)은 곧 일본의 자멸로 연결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남은 일은 기다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멀고도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