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일제의 사학 탄압으로 두 사람은 고창고보를 떠나 정 선생은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으며, 이 선생은 도산 안창호, 인촌 김성수 선생과 함께 흥사단에서 일하다 보성전문학교 훈육주임을 지냈다. 이후 두 사람의 우정은 대를 이어 서울대 의대를 졸업 후 군의관으로 일했던 이 선생의 차남 봉기 씨와 서울대 국문과를 다녔던 정 선생의 차녀 덕모 씨가 결혼하였고, 두 사람의 아들 종훈 씨가 바로 이 양의 아버지이다.

이 양의 이름 <미한>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미한 양의 수상 소식은 80여 년 전에 양태승 선생이 터를 일군 고창고보의 민족교육을 향한 열정과 희망의 씨앗이 오늘날 만리타향 미국에서 그 결실을 맺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양태승 교장의 장남 동만(고창고보 5회)이 함흥 영생고보 교사로 재임한 적이 있는데, 당시 조선어학회 관련자로 고창고보의 은사인 정인승 선생이 함흥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교직자로서 왜경의 감시를 무릅쓰고 날마다 지성으로 은사의 옥바라지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고창고보의 교사와 학생이 갖는 끈끈한 정은 보통의 사제지간을 뛰어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미한 양의 일화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의 정신과 사상이 어떻게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는지 잘 알려주고 있다.

한편 민립학교 설립을 위한 시작 단계에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고창고보는 1920년대 애국계몽운동이 펼쳐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것은 고창고보가 당시 조선사회가 지향했던 실력양성운동의 성과로 평가될 만한 좋은 사례였기 때문이다. 또한 고창고보를 다니는 학생들의 자부심과 저항감은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이에 관한 사례 하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1925년 음력 정초 정월 대보름날을 맞아 민속놀이를 하는데 짚으로 꼬아서 만든 줄을 어른과 아이가 서로 잡아당기는 줄다리기 행사였다. 고창읍은 보통 마을과 달리 동부와 서부가 줄다리기를 해왔으나 서부의 숫자가 많아 줄다리기 승부는 뻔한 것이어서 나중에는 패싸움이 되어 판을 가리게 되었다. 섣달그믐부터 밤마다 농악을 울리고 기세를 올리다가 대보름에는 큰 소동이 벌어지므로 학생들 사이에도 이 행사는 흥미로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