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는 1922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헤세의 초기 작품들이 다소 몽상적인 성장소설이었다면 이 작품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깊이 탐색한 영성적 소설에 해당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싯다르타는 인도의 한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장차 바라문의 왕으로 추대될 촉망받는 청년이었으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해방될 깨달음을 얻고자 친구 고빈다(Govinda)와 함께 고행의 길을 떠나게 된다.

여행 중에 이 둘은 열반에 도달한 고타마(Gautama)의 설법을 듣게 되는데 고빈다는 바로 불가에 귀의한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사변적인 가르침으로는 해탈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정신적인 방황을 하게 된다.

이후 본능의 세계를 대변하는 여인 카말라(Kamala)를 통해 사랑의 환희를 맛보고 상인 카마스바미 밑에서 상인으로 살아가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진리는 결코 현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생의 허무에 더 깊이 빠진다.

절망한 싯다르타는 강물에 투신하려고 한다. 그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브라만의 성스러운 옴(Om) 소리를 듣게 되고 그의 앞에 자아의 구제를 의미하는 수천 개의 눈을 가진 보디삿타바(Bodhisattava)가 모습을 드러낸다.

뱃사공이 된 싯다르타는 어느 날 자기의 정부였던 카말라를 다시 만나게 된다. 카말라는 싯다르타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과 함께 석가의 임종을 보러가다가 뱀에 물려 죽는다. 싯다르타는 카말라의 임종을 지켜보며 새로운 측면에서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죽음은 감각본능 세계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두 세계에 놓여 있는 시간의 종적인 테두리를 넘어서는, 생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 즉 윤회의 일면임을 깨닫는다. 궁극적인 진리를 터득하게 된 싯다르타는 오랜 애욕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된다.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난 긴 여정에서 ‘진정한 깨달음은 누구에게 배울 수 없다는 것’과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우리를 현존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아는 세존 부처의 이야기가 아니라 헤세가 만들어낸 가공된 인물의 수행록이다. 길을 가더라도 이미 지도에 그려져 있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새로운 길을 내며 그것을 마음에 아로새기며 가는 인물이 헤세에게는 소중했나 보다. 글로써 배우는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해 이 세상의 산과 물을 다른 것의 비유가 아닌 산과 물로서 직접 느끼는 것, 그것에서 헤세는 고단한 삶의 의미를 얻고자 했고 세상의 난관과 고뇌, 그 먼 길 끝에 도달한 곳이 세상의 모든 속박과 경계로부터 자유로운 해방과 해탈의 경지가 아닐까 하고 싯다르타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