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에게 《태공병법서(太公兵法書)》을 전해 준 수수께끼의 그 노인을 훗날 황석공(黃石公)이라고 일컫게 됐는데 그 연유는, 한漢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하고 13년이 지난 후 장량과 제북으로 가게 됐다. 가는 길에 노인이 병법서를 전해주면서 일러 준 것을 기억하고 곡성산 밑에 가보니 정말 노란 돌이 하나 놓여 있었다. 장량은 노란 돌을 자신인 줄 알라고 했던 노인의 말을 떠올려 그 돌을 황석공(黃石公)이라 이름을 붙이고 그 돌에 제사를 지내며 그 노인을 섬기듯 했다.

장량이 하비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때 만났던 인물 중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는데,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의 숙부인 항백(項伯)이다. 당시 항백은 살인죄를 저질러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장량이 항백을 숨겨 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이 일은 훗날 '홍문의 회(會)'에서 유방이 항우의 측근에 의해 시해(弑害) 당할 절체절명의 순간 유방을 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장량은 사기(史記)에서의 기록을 보면 거의 10년간 협객 생활을 했다. 협(俠)의 세계라면 나름대로 거친 남자들의 세계인데 장량의 초상화가 아녀자같이 예쁜 모습이라 사마천이 놀랐다고 전해진다. 외모는 그러했으나 장량은 영향력이 꽤 커 진승(陳勝)이 난을 일으켰을 때 난을 제압하고자 사람을 모으자 100여 명 정도가 몰려왔다고 전한다.

유방과 장량은 출신배경과 살아온 방식도 너무 달랐으나 의외로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다. 장량은 곧잘 유방을 찾아가서 자신이 익힌 태공병법에 대해 설명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유방은 열심히 경청하고 태공병법을 실전에서 다양하게 활용했다. 실전에서 그 병법의 효과가 나타나자 더욱 장량을 신뢰하며 적극적으로 계속 배우고자 했다. 장량 역시 자신의 병법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 기뻤다. "유방은 필시 하늘이 낸 사람일 것이다."라고 여길 정도였다.

장량이 유방의 책사로 활약한 후부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 기세가 높아진 유방은 진나라 함양까지 탈환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의 말을 듣고 항우가 함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길목에 있는 함곡관을 막는다.

당시 항우는 진나라의 주력 부대를 격파시킨 후 어마어마한 위세로 함곡관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항우는 무려 40만의 병력을 이끌고 다가오고 있었는데 유방의 병력은 10만뿐이라 싸우면 백전백패(百戰百敗)의 형세였다.

이때 초나라 군에 있던 항백은 유방이 박살나면 같이 있는 장량까지 해를 입을까 걱정돼 야밤에 몰래 장량을 찾아와 이 모든 일을 알린다.

이에 장량은 유방에게 자초지종을 전한다. 유방이 크게 놀라 벌벌 떨자 장량이 화가 나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함곡관을 막았습니까?"라고 따진다. 유방은 무안해져서 "생각 없는 간신배한테 내가 속아서…."라고 변명했다. 장량은 "그럼 항우를 이길 자신이 있었단 말입니까?" 라고 꾸짖었고 유방은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나는 결코 항우와 대적할 수 없소. 이제 어찌 하면 좋겠소?"라고 말했다.

이에 장량은 한 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항백을 데려와 유방과 만나게 한 뒤 둘의 자식 간에 혼인 약속을 맺게 했다. 크게 대접받고 나서 항우의 진영으로 돌아온 항백은 유방을 변호해 준다. "패공은 결코 자네에게 거역할 뜻은 없었다네. 지금은 세상이 어지럽고 곳곳에 비적들이 날뛰고 있으니, 안전하게 관문을 막아 백성들을 안심시키려고 했던 것일세." 그 말을 옳다 여긴 항우는 유방에 대한 화를 풀고 싸울 생각을 그만두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