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의 유방劉邦을 도와 통일을 이뤄낸 세 영웅호걸 중 한 사람인 장량張良은 유방劉邦과 함께 하며 대국적인 전략을 그려 초한전(楚漢戰)에서 한漢의 승리를 이끌어 내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한신의 경우는 전쟁의 신神으로, 소하의 경우는 위대한 정치행정가로 각각의 역할이 뚜렷했던 바에 비하면 장량은 꼭 집어 이렇다 할 만하게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사람의 속내까지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졌다는 것, 거시적인 책략을 내놓았다는 점, 모든 공신이 대부분 한 고조가 된 유방이나 여태후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책사(策士)의 역할을 다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그가 얼마나 노련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유방(劉邦)이나 소하, 한신의 출신성분은 그만그만했다. 이에 비해 장량은 대대로 한(韓)의 귀족가문이었다. 그러나 BC 230년,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있던 진(秦)나라에 의해 장량의 나라 한(韓)은 무참하게 무너지고 만다.

조국이 진(秦)에 의해 멸망하자 장량은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재산을 털어 길을 떠나게 되고 120근이나 되는 철퇴를 마련, 어느 역사(力士)와 함께 원수 진시황(秦始皇)을 암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암살을 두려워했던 진시황의 속임수로 뒤따르던 부거(副車)를 잘못 공격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진시황은 대노하여 대수색령을 내리고 자객이라고 의심 가는 인물들을 모두 잡아들여 죽였다.

장량은 훗날의 복수를 위해 이름과 성을 모두 바꾸고 하비(下邳)로 들어가 이 소동이 가라앉을 때까지 납짝 엎드려 숨어 살았다.

하비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장량이 물가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한 노인이 장량을 보더니 느닷없이 신발을 벗어 다리 아래로 내던졌다. 그리고선 장량에게 좀 주워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장량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쨌든 노인을 공경하는 차원에서 다리 밑으로 내려가 신발을 주워 노인에게 가져다 줬다. 노인은 장량에게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신발을 신겨 달라고 발을 내밀었다. 장량은 어이가 없었지만 또 묵묵히 노인의 요구를 받들어 신발을 신겨주었다.

그런 장량을 보고 노인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물이군' 하면서 다음날 아침에 그 다리 위에서 보자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장량이 그 다리로 나갔는데 노인이 먼저 와 있었다. 도착한 장량을 보더니 노인은 대뜸 자신을 기다리게 했다고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내일 다시 나오라고 했다. 장량은 다음날 더 일찍 다리로 나갔으나 이번에도 노인은 먼저 나와 있으면서 장량에게 늦게 나왔다고 욕을 해대며 내일 보자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장량은 그날 해가 저물자마자 다리로 가서 밤을 새면서 노인을 기다렸다.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장량을 크게 칭찬하고 책 한 권을 건네주며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 훗날 제왕의 스승이 되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노인이 장량에게 건네준 책은 태공병법(太公兵法)이었다. 이 책은 제(齊)나라의 시조(始祖) 강태공(姜太公)이 지은 병법서였다. 장량은 기이한 일이라고 여기면서 그 책을 열심히 공부하게 되는데 이후 유방을 만나 책사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