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라 하면 으레 많은 돈을 모은 거부들이 출연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당연했으며, 이들이 이사장이나 이사가 되어 학교의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학교 교육은 그들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고, 그러다보니 외부로부터의 압력에도 자연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형편은 각종 사립학교나 미션스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교는 거금을 출연한 설립자의 손에서 독립할 수 없었고, 학교 교육 역시 조선의 사립학교라는 취지를 살릴 만한 교육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매하가 구상한 민립학교의 설립이 가능하다면 당시로서는 그만큼 민족교육에 적합한 형태를 갖춘 학교는 없는 실정이었다.

일단 오산고보를 살리기 위하여 순수한 군민의 자금 출연에 의한 민립학교 설립이라는 목표를 확정한 이상, 매하에게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매하는 곧바로 이 역사적인 발상의 전환을 고창 곳곳을 찾아다니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창군민에 의한 그들의 학교, 그것은 개미집 속의 개미들처럼 수많은 이들의 손에 의해 지지되고 지속되어질 민족교육을 향한 커다란 실험이었고, 의미 있는 시도였다.

하지만 그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 사립중등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그가 예상한 모금액은 30만 원이라는 거금이었으며, 학교의 교사(校舍) 역시 확보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또한 시간도 촉박했다. 빠른 시일 내에 자금과 학교설립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산고보를 다니고 있던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할 형편이었다. 그에게는 자식같이 키워온 학생들이었다. 어렵게 세운 학교에서 공부해온 이들을 너무 쉽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흩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들 개개인은 이 땅의 동량이 될 터였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들을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학교를 설립해야 했으므로 그는 더욱더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