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아베 코보는 의대에 진학했으나 흥미를 느끼지 못해 그만 두고 문학을 선택했다. 전후(戰後)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간소외, 정체성 상실 등 실존주의적 가치를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그를 ‘일본의 카프카’라고도 일컫기도 한다.

『모래의 여자』에 등장하는 ‘니키 준페이’는 31세의 교사로 곤충채집 마니아이다. 사흘간의 휴가를 내 희귀한 곤충을 찾아 나서는데 가족이나 직장동료 등 어느 누구에게도 행방을 알리지 않고 떠난다.

그는 해안가 사막 같은 모래밭에서 날이 저물도록 곤충을 채집하다가 차를 놓치게 된다. 그곳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구 안 어느 여인의 집에서 하룻밤만 묵기로 한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 감금된 채 강제 노동을 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가 갇힌 집의 여주인과 그 마을 사람들은 모래 구덩이를 5미터 깊이로 판 후 그 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쉬지 않고 모래를 퍼내는 일을 한다. 한 사람이라도 그 일을 그만 두면 그 마을 전체가 위험에 빠지므로 어떤 공동체적인 사명감까지 가지고 헌신하듯이 밤새 모래를 퍼내고 낮이면 자는 생활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 선택이 아닌 구속과 강제된 삶, 아무 의미도 없이 반복되는 모래 퍼내는 노동은 준페이를 어이없게 만든다. 부조리한 삶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노예처럼 사는 사구의 여주인도 못마땅한데 자신에게까지 그 굴레를 뒤집어씌운 그 여인과 그 마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끈질기게 탈출을 시도한다.

파란(波瀾) 끝에 탈출에 성공해 자유를 찾았지만, 그 자유는 쫓기는 자가 되어 모래밭을 계속 걸어 다녀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리곤 그 마을 사람들의 계교에 의해 사구보다 더 무서운 모래 늪에 빨려 들어갔다가 그들에게 구걸하듯 구조요청을 해서 빠져나오게 되지만 다시 무덤 같은 사구 속으로 떨어진다.

이후에도 준페이는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한다. 어느 날 우연히 탈출 기회를 얻게 되는데 정작 사구 밖으로 한 번 나갔을 뿐 자신이 발견한 후 설치한 유수(流水)장치를 살피기 위해 그 지옥 같은 사구로 되돌아오면서 소설은 끝난다.

이 작품은 소설로 읽든 영화로 보든 마치 소리 없이 쏟아져 내리며 흐르는 모래더미에 묻혀버릴 것 같은 듯 답답함이 내내 함께한다.

이 작품의 배경인 사구와 모래마을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어떤 체제나 이념의 비유라는 걸 어느 정도 식견이 있다면 눈치 챌 수 있다. 모래의 속성을 이용한 부조리한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 ‘감시와 처벌’의 메커니즘, 자유의 박탈과 개성의 말살 등은 반 유토피아적 근대국가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아베 코보는 『모래의 여자』의 세계를 이데올로기적 축소비유보다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으로 확장했다. 그래서 아베 코보를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하게 만들었으며 일본의 카프카라고 불리게 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돌아가 사구 속에서의 반복되는 노동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모래를 퍼내는 노동은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동의어로 봐도 무방하다. ‘모래의 여자’를 그냥 비참한 수인(囚人)으로만 볼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그녀야말로 모래와 더불어 살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닐까. 또한 준페이의 자유를 향한 의지와 거듭되는 탈출 패배, 전락(轉落)은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은 아닐까. 모래의 여자든 준페이든 두 사람의 삶의 태도는 부조리와 모순에 가득찬 시스템 또는 체제 속에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치열하고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