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양반고을로 명성이 높았던 창평에서 불기 시작한 신교육의 바람은 인근 지역의 양반가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명성이 높은 양반가의 자제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 가인(佳人) 김병로(金炳魯), 근촌(近村) 백관수(白寬洙) 등 호남지역의 뛰어난 인물들이 모두 춘간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춘강 선생이 학숙을 시작한 시기는 1905년경인데, 이 시기 서울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매하도 학숙을 출입하면서 인촌과 고하 등과 함께 교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때 맺은 인연은 서울로 상경 하고도 이어졌으며, 그들과 평생의 지기이며 동지로서 끈끈한 유대를 이어가게 되었다.

당시 춘강 선생이 독립을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하고 그 중에서도 유독 인재 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교육 사업에 투신했던 모습들은 이후 매하에게 귀중한 사표가 되었다. 신교육의 불모지에 신교육을 열었던 춘강 선생의 혜안과 강한 열의가 청년 매하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이에 ‘호남 근대교육의 시창자’로 평가 되는 춘강 선생의 명맥을 매하가 잇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할 수 있겠다.

창흥의숙의 춘강 선생 밑에서 신학문의 기초를 닦은 매하는 본격적으로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1980년 서울로 상경하여 융희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매하의 융희학교 입학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곳에서 소년 매하는 활달하고 포용력 있는 성품과 6척 장구의 큰 체격을 지닌 청년으로 장성하게 된다. 이는 매하의 유년기에 겪은 조국 상실의 아픔을 뛰어넘는 계기가 된 것이며, 자신의 선대가 살아온 시대정신, 즉 성리학적 가치에 따른 삶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

봇짐을 메고 서울로 오르는 동안에도 조선사회 곳곳에서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변혁과 침략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이에 항거하는 조선 사람들의 저항도 좀더 적극적인 모습을 띄어갔다. 서울에 이르는 여정에서 그가 직접 목격한 조선의 모습은 일본군의 무도한 침략과 밀려드는 신문물의 범람, 이에 저항하는 조선 유림들의 기개가 함께 어우러진 사회였다. 그것은 매하에게 있어서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위기의 확인이었으며, 조국을 위해 헌신해야 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확신의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