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출생지인 화순은 광주에 인접한 곳이어서 일찍부터 선진문화의 물결에 접할 수 있었지만, 엄하고 완고한 가정에서 소년 시절을 한학에 정진하면서 사서삼경에 통달했다. 만약 조선왕조가 계속 이어졌다면 양태승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면서 풍족한 양반생활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줄곧 동학전쟁과 의병전쟁으로 점철 된 혼란스러운 시기였으며, 나라의 운명과 함께 매하의 운명 역시 급격한 변화에 봉착하게 되었다. 집안의 어른들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모르는 시국의 흐름에 대해 불안과 걱정을 나누며 의기를 투합했다.

당시 양태승은 집안의 전통에 따라서 한학(漢學)을 공부했다. 그때까지도 대부분의 교육은 가내에서 집안 어른이나 인근에 이름 있는 선생님을 모시어 이루어지곤 했다. 그리고 동리의 아이들과 함께 서당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양태승의 경우에도 그러했는데, 그즈음 규장각(奎章閣)에서 직각(直閣) 벼슬을 지낸 춘강(春崗) 고정주(高鼎柱, 1863~1933) 선생이 고향인 창평으로 낙향했다.

춘강 선생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제봉 고경명 장군의 아들 학봉(鶴峯) 고인후(高因厚, 1561~1592)의 후손이다. 1884년 복시(覆試)에 합격하고 규장각의 각종 서적과 왕실문서를 관리하는 직각직에 있으면서 왕자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황자전독(皇子典讀)을 맡았는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일제의 무력으로 어이없이 나라를 빼앗기는 현장을 직접 목도한 춘강 선생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근대화교육으로 무장한 인재를 양성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향에 내려온 것이다. 그리하여 지역의 후학들에게 신학문의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선생은 사재를 털어 집안의 상월정(上月亭)에서 시작한 사설학당을 영학숙(英學塾)으로, 그리고 1980년에는 창흥의숙으로 발전 시켜 나갔다.

이곳에서는 춘강 선생의 교육관에 따라 수업료도 일절 받지 않고 서울에서 직접 선생을 모셔와 한문 · 국사 · 영어 · 일어 · 산술 등을 가르쳤다. 세계사의 조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판단 아래, 춘강 선생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기초과목들을 가르치는 교육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