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진폐환자에 대한 조기 치료와 재활, 직업훈련으로 진폐환자도 다른 일자리를 갖고 사회복귀를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재활'에 진폐 제도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주 CBS의 연속 기획보도 "산업화의 그늘, 진폐환자의 끝나지 않는 고통" 오늘은 네 번째 순서로 “진폐 재활과 요양의 선진국, 독일”에 대해 보도한다.[편집자 주]

독일 보쿰의 보쿰대학병원 광산노동자전문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고 있는 '볼렘무스'씨(75)

엑스레이 촬영과 폐 기능 검사에 이어 담당 주치의인 ‘슐츠’ 박사와의 상담이 이어졌다.

볼렘무스씨는 17살 때부터 하노버 탄광에서 채탄작업을 하다 진폐 판정을 받았다.

그는 1971년 진폐 판정을 받았지만 재활치료와 직업훈련을 통해 다른 일자리를 얻어 1992년 정년퇴직할 수 있었다.

볼렘무스씨는 “기본적으로 진폐 인정을 받았고, 직업훈련을 통해 다른 직업을 갖고 40년 이상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대단히 만족한다.”며 “진폐 판정 후에도 정기적인 검진을 받고 좋은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진폐에 대한 조기 발견과 재활, 작업 전환을 통해 ‘볼렘무스’씨 처럼 진폐환자들도 다른 업종에서 계속 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쿰대학병원 슐츠 박사는 “볼렘무스씨는 조기 발견을 통해 작업 전환이 가능했다.”며 “매년 엑스레이 검사로 증세 악화 여부를 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노르드라인 베스트 팔렌 주 정부의 노동복지 자문위원인 ‘쉼삭’씨는 “직업병이나 산재사고로 인해 환자가 발생할 경우 궁극적인 목표는 해당 환자가 치료와 재활을 거쳐 노동력을 잃지 않고 해당 업종에 복귀하거나 다른 업종에 재취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진폐 판정을 받으면 노동력을 상실하고 평생을 병상에서 보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독일에서는 이처럼 진폐 치료와 재활을 통한 사회복귀를 정책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 북부의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위치한 ‘그라프샤프트’ 재활 전문 요양병원.

원래 수도원이었던 이 병원은 독일의 전통적인 공업지역인 루르 지역에 인접해 있어 진폐환자들이 많이 찾아 요양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폐 전문 요양병원이 됐다.

이 병원에서는 진폐 환자의 육체적 재활뿐만 아니라 일상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치료와 재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라프샤프트 요양병원 ‘오사이란’ 박사는 “병을 치료했다고 해서 환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환자가 치료와 재활을 통해 직업복귀와 함께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독일에서는 진폐환자에 대한 육체적 재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재활(social rehabilitation)에 정책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요양원에서는 장기 입원을 허용하지 않고 최대 4주까지 입원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재활치료를 한 뒤 가정으로 복귀시키고 있다.


즉 진폐환자 치료와 재활은 운동재활과 호흡재활 등을 병행하면서 입원 치료보다는 환자들이 가정에 복귀해도 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돕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독일에서는 오는 2018년까지 모든 탄광이 폐쇄될 예정이지만 여전히 진폐환자가 보고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1년에 15,000건의 산재가 발생하는데 그 가운데 1,200건이 진폐다.

천여 건 이상의 진폐가 발생하고 있지만 진폐 판정이 주치의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어 진폐환자들의 판정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독일에서는 노동자와 학생들이 대부분 가입해 있는 25개 산재보험조합에 소속된 전문의들이 주치의의 소견을 존중해 진폐 판정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독일도 엑스레이 필름과 폐 기능 검사 등을 토대로 진폐 여부를 판정하지만 기본적으로 폐 기능이 20% 상실되면 진폐로 인정하고 있다.

독일 산재보험조합 연합회 ‘오텐’ 박사는 “진폐 판정은 2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주치의가 진폐 증세를 발견해 산재보험조합에 신고하면, 산재보험조합에서는 주치의의 소견을 토대로 전문의들이 최종 판단을 한다.”고 말했다.

산재보험 심사에서 이뤄진 진폐 판정에 불만이 있을 경우 진폐환자들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고 재심은 사업주와 노동자가 5대 5로 참여하는 ‘진폐보상위원회’에서 심사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진폐환자가 재심 결과에도 불복할 경우 ‘사회법정’(social court)과 사회고등법정(social high court)에서 최종적으로 진폐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결국 진폐 판정에서 주치의의 소견을 최대한 존중할 뿐만 아니라 재심 과정에서는 노동자 측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독일정부가 진폐환자를 비롯한 산재환자 관리와 관련해 견지하고 있는 3가지 목표는 예방과 재활, 보상이다.

다시 말해 작업장에서 최대한 진폐 발생을 억제하고, 진폐가 발생하면 치료와 재활을 통해 사회에 복귀시키며,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보상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독일정부의 진폐환자 관리 목표와 함께 진폐환자가 사회적 무능력자로 전락하는 대신 사회복귀를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재활에 힘쓰고 있는 점은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광주CBS 조기선 기자 rainmaker@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