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진폐 판정에서 진폐 합병증을 폭넓게 인정하고 진폐환자 대부분이 통원 치료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갖춰 진폐환자의 치료와 재활에서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광주 CBS의 연속 기획보도 “산업화의 그늘, 진폐환자의 끝나지 않는 고통”

세 번째 순서로 “진폐 재활과 요양의 선진국, 일본”에 대해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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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히마와리’ 진료소.

해바라기 진료소라는 뜻의 이 병원은 지난 1990년 문을 연 의원급의 작은 병원이다.

히마와리 진료소 ‘히라노’ 원장은 지난 1986년 ‘기타이바라기’시의 퇴직 광부들에 대한 집단 진폐검진에서 55명의 진폐환자를 발견한 이후 꾸준히 진폐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현재도 70여명의 진폐환자가 정기적으로 히마와리 진료소에서 검진을 받고 약을 타고 있다.

지난 26년 동안 일본 ‘기타이바라기’시 ‘조반’ 탄광에서 석탄을 캐다 진폐증에 걸린 ‘기쿠지’씨(79)도 히마와리 진료소를 정기적으로 찾고 있다.

기쿠지씨는 “입원에 비하면 집에서 생활하는 게 좋다.”며 “몸을 움직일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입원해야 하지만, 통원하면서 몸이 안 좋으면 가까운 병원에 다니면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진폐 요양승인을 받고 병원에서 평생을 살아갈 환자지만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히라노 원장은 “기관지염이나 폐렴이 오는 경우는 입원하지만, 입원하더라도 2주 내지 3주 만 일시적으로 치료하고 퇴원한다.”며 “진폐환자는 거의 통원 치료하고 있고, 계속 입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진폐 치료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진폐 요양승인을 받고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대개 평생을 병원에서 살아가지만, 일본에서는 필요할 때만 입원 치료를 받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8월 현재 3,725명의 진폐 요양환자 중 무려 85%인 3,140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반면 585명만이 통원 치료를 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는 진폐 요양병원에서 검진과 치료를 전담하고 있지만, 일본은 전국 어느 병원에서도 산재보험으로 진폐증과 진폐 합병증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진폐 판정과 관련해서는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엑스레이 필름과 폐기능 검사로 진폐를 판정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진폐심사협의회에서 일괄적으로 진폐 판정을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주치의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방의 진폐 심사의가 1차적으로 진폐 여부를 판정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진폐심사위원회 이노우에 주임은 “각 지방의 노동기준국의 진폐 심사의가 진폐 판정을 하고, 각 지방의 노동기준감독소 소장이 주치의가 제시한 소견서에 근거해 합병증 여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진폐를 증상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나누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이상이 없는 ‘관리 1’에서 증상이 가장 심각한 ‘관리 4’까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진폐환자 가운데 80% 이상이 증상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관리 2’ 등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합병증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속발성 기관지염 등 진폐 합병증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일본의 진폐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합병증이 발견된 요양환자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한다면 일본에서는 중증이 아닐 경우 철저하게 통원 치료를 원칙으로 한다.

히마와리 진료소 히라노 원장은 “진폐는 완치가 안 된다. 따라서 진폐를 조기에 발견하고, 진폐 진행을 막는 게 포인트다.”라며 “합병증에 대해서도 조기에 치료하되 재가 치료가 원칙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산소환자’인 올해 88살인 ‘세끼구찌’씨도 지난 1994년 진폐 판정을 받았지만 14년째 도쿄의 집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입원 치료 대신 통원 치료를 하고 있는 ‘세끼구찌’씨는 이동할 때나 잠 잘 때는 산재가 비용을 부담하고 병원에서 제공한 산소 호흡기를 이용한다.

‘세끼구찌’씨 부인은 “이동할 때는 1분에 2리터, 잠 잘 때는 1분에 1리터, 이렇게 산소요법 지시서가 있다. 주치의가 재택 산소요법 지시서를 처방해 줬다.”고 말했다.

일본의 진폐환자들이 증상이 심하지 않을 경우 굳이 입원을 고집하지 않는 이유는 일본의 잘 갖춰진 사회 안전망 때문이다.

진폐 판정을 받으면 휴업급여나 상병보상연금과 함께 국민연금을 받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진폐 판정의 표준화와 합병증 인정범위 확대 그리고 사회 안전망 확충을 통해 진폐환자들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광주CBS 조기선 기자 rainmaker@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