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의회 앞 천막농성

화순군의회 맞은편 도로에는 천막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민동의 없는 풍력발전 저지 화순군대책위’(대표 김길열, 이하 대책위)는 지난 8월 31일부터, 풍력발전기와 마을간 이격거리 조례 개정을 요구하며 삭발투쟁 및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현재 동복에너지가 추진 중인 밤실산풍력발전을 반대하고 있다. 천막을 지키고 있던 유천리 마을 대표는 “풍력발전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는 농민에게도 절실하며, 그 중요성을 농민들 스스로 교육까지 한다. 하지만 주민동의 없는 방식은 잘못되지 않았냐”며 군의회와 업체 측을 비난했다. 덧붙여 “추운 겨울에 어르신들 손까지 잡아가며, 서명을 받아 주민 조례안을 청구했는데, 이를 6개월 넘게 무시하는 군의회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무엇이 평화롭게 지내던 마을 주민들을 천막으로 나오게 하고, 스스로 머리를 깎게 만들었을까.


풍력발전 최적의 입지를 지닌 화순군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과 맞물려, 각 지자체에서는 신재생에너지 활용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다. 풍력발전에 최적의 입지를 지녔다는 화순군 역시 마찬가지다. 화순은 임야 면적만 72% 달하며, 이는 전남 도내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이미 관내엔 동면 별산에서 화순풍력발전단지가 가동 중이며, 도암면과 청풍면에 인접한 금성산풍력발전은 주민 설득 과정을 거쳐 건설 단계를 앞두고 있다. 좌초 중인 발전단지도 있다. 화순풍력발전단지 인근에 추가로 발전기를 건설하려던 별산풍력발전은 주민반발로 인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발전사업허가도 받지 못했다. 유니슨이 동복면에 추진하려던 모후산(운월산)풍력 역시 마찬가지다.


주민 무시한 조례 완화와 허위주민동의서 논란

현재 관내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밤실산풍력발전단지다. 사업을 추진중인 동복에너지는 2018년 11월 발전사업허가를 따냈으나, 주민반대에 부딪혀 아직까지 화순군으로부터 개발행위허가를 받지 못했다.

동복에너지가 주민반대에 부딪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발단은 지난해 화순군의회에서 허가기준을 완화한 일이다. 화순군은 2019년 8월, 도시계획조례에 풍력발전시설의 이격거리에 대한 조항을 신설하였다. 이에 따라 풍력발전시설은 10호 이상 거주지로부터 2km, 10호 미만 거주지로부터 1.5km의 이격거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러나 이를 각각 700m와 500m로 줄이자는 주장이 A군의원으로부터 나오더니, 기어이 지난해 9월, 이격거리는 각각 1.2km와 800m로 대폭 완화되었다. 여러 군의원들이 반대 의견을 냈고 부결 가능성을 내비쳤기에, 갑작스런 조례개정안 통과는 주민들에게 있어 뒤통수를 맞은거나 다름 없었다.

주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또 있다. 업체는 발전사업허가를 따내기 위해 주민동의서를 받아냈는데, 이중 대다수가 허위로 작성한 동의서였다. 심지어 2006년에 돌아가신 주민의 서명도 있었다. 본래 유천리가 앞장서서 사업에 반대해왔으나, 이 일로 다른 마을들 역시 반대의견으로 돌아섰다. 대책위는 “동의서에 서명했다고 밝힌 사람 중에는 B군의원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마을이장도 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B군의원을 광주지검에 고발한 상태다.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지방자치, 주민을 무시하는 군의회

대책위는 주민발의를 위해 군민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격거리를 원래대로인 2km와 1.5km로 복구하자는 것이다. 당초 화순군 유권자의 40분의 1인 1천3백여 명의 청구만 있어도 발의가 가능하지만, 대책위는 3천3백여 명의 명부를 받아 지난 1월 화순군에 제출했다. 더 많은 인원을 모을 수 있었음에도, 하루라도 빨리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런 주민들의 바람에도 군의회는 말바꾸기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주민발의는 3월부터 상정은 됐으나, 여전히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 대책위는 “3월에 논의하겠다. 5월에 원포인트로 논의하겠다. 6월에도 논의하겠다는게 9월까지 왔다‘며 군의회가 시간을 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류영길 화순군의회 산업건설위원장은 “의원들간의 의견이 종합되지 않아 계속 보류중이다”라고 밝혔다. 혹여나 부결되어 주민발의를 폐기할 순 없기에, 의회의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 결정을 미룬다는 입장이었다.

주민발의가 표류 중인 사이 화순군의회 산업건설위원회는 밤실산 일대 현지 답사는 물론, 전국의 풍력발전지를 다니며 전문가들을 만나고, 주민들의 이격거리 요구가 틀리지 않았다는 의견을 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마저 시간끌기로 바라보는 주민들도 있다. 주민소환이 두려워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척 했다는 것이다. 군의회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깨졌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순풍력발전

화순풍력발전 해결방안은 없는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은 주민 발의가 군의회를 통과하는 것이다. 이격거리가 원래대로 복구된다면 밤실산풍력단지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화순군 관계자는 “이격거리에 따라 발전기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시설 전체 용량이 바뀌고 이게 곧 수익과 연결 될 것이다. 줄어드는 숫자만큼 발전기가 커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발전기가 커진다면 훼손되는 삼림의 면적도 늘어나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

유천리 주민대표는 대책위의 세 가지 메시지라며 “첫째, 주민들이 살 수 있게는 해달라. 둘째, 법과 절차는 지켜달라. 셋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 해달라”는 말을 전했다. 주민들이 마을에서 살기 위해선, 멋대로 바꾼 조례가 아니라 원래의 이격거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또한 대책위에선 업체가 밝힌 투자금액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정확한 정보가 주민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장흥의 한 풍력발전 사업에서는 마을 발전기금을 약속해 놓고, 건설에 반대했던 마을은 지원하지 않겠다며 말을 바꾼 사례가 있었다. 구체적이고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요한 이유다.


신안의 사례, 뒤집어질 약속보단 항구적인 혜택이 돌아가야

신안에서는 주민이 펀드형식으로 기금을 모아, 태양열과 해상풍력 발전사업에 참여하고 수익금을 나눠 갖는 방식을 쓰고 있다. 화순의 경우 발전단지의 크기로 인해 이 같은 수익분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업체의 말바꾸기로 뒤집어질 약속이 아니라, 마을의 발전기금이든 투자든 주민들에게 일정 부분의 혜택이 구조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발전시설을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겠지만, 업체에게 수익을 가져다 주는 건 주민들이 평생을 함께한 산과 그곳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논의도 조례안이 복구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주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하는 지방자치제도지만, 현재는 천막과 군의회 건물의 높이만큼이나 서로 떨어져 있다. 좁혀야 하는 건 발전기와 거주지 사이의 거리가 아니라 주민들과의 거리가 아닐까. 멀리 산 위에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를 그저 바라볼 게 아니라, 낮은 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바람을 마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