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하고 맑은 소의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저 소들을 내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7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진학은 생각도 못하고, 광주농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공직의 길로 접어들어 화순군청을 비롯, 능주면사무소와 도곡면사무소 등 화순군 관내에서만 31년여를 근무하며 오로지 앞만 보고만 걸어왔던 전국한우협회 화순군 지부 고재익 지부장.

고 지부장은 어느 순간 문득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진정 원했던 삶은 이것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선택한 삶이 바로 한우사육이었다. 하지만 고 지부장에게 한우사육은 그다지 낯선 일만은 아니었다.

80년대 초반, 공직생활 때문에 직접 돌보진 못했지만 동생이 23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어서 틈틈이 일손을 도우며 많은 기술을 습득했다고 한다. “당시엔 경기도 좋아서 수입도 괜찮았어요. 능주에서는 우리 집 따라올 농가가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라며 한우가 제 가치를 인정받을 무렵 얘기를 꺼내는 고 지부장.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이 외국으로부터 생우를 수입하자 소값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해 한우농가들 거의가 파산할 정도로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렇게 아픈 경험이 있던 고 지부장의 가족들로서는 공직생활을 접고 다시 소를 키우겠다고 나선 고 지부장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퇴직을 하지 않고 근무해 사무관이 됐다면 지난 6월 30일자로 정년을 맞는다고 회상하는 고 지부장은 지금도 그 때 퇴직한 것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그만큼 공직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국민과 주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공무원의 임무일 것인데 정작 일선 공무원들은 지극히 당연한 원칙과 소신마저도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느라 제 할 일마저도 못하는 상황을 많이 겪었었다”며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일부 정무직 인사들의 전횡과 횡포는 참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또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해선 주민들의 올바른 시민의식이 절실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지역민들은 권리 찾기엔 목소리가 높아도 의무는 지려하지 않고 있는 듯해 아쉽다”고 말한다.

지난 2004년에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은 고 지부장은 가족들의 염려와 걱정을 뒤로 하고 정작 본인은 쓸데없는 좌절보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기르는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고 한다. 다른 병도 아니고 말기 암환자였다는 사실을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고 지부장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비결을 물으니 “아무래도 스트레스 안 받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던 게 주효하지 않았겠느냐”고 진단한다.

현재 상태를 물으니 “지난해 건강검진을 받아보니 특별히 안 좋은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 정도면 거의 완치수준 아니겠느냐”고 환하게 웃는다. 이어 1년여에 걸친 항암 및 약물치료를 받으며 머리카락도 안 빠졌다며 ‘마음건강이야 말로 최고의 항암비결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가족들 먹을 벼농사도 3천여 평 지으며 130여 두의 한우를 사육하고 있는 고 지부장은 규모로만 따지자면 그다지 내세울게 없지만 지난해 6월 상순 농협 축산물 공판장에 거세우 10마리를 출하한 결과 한우 최고의 등급인 1++ 등급은 전국에서도 10%안에 들기조차 힘든 것으로 알려졌는데 고 지부장은 무려 6마리나 1++등급을, 3마리는 1+등급을, 1마리는 1등급을 받아 주위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았다고. 그야말로 알짜배기 농사를 지은 셈이다.

앞으로도 꾸준한 종자개량을 통해 우량품종을 생산해 내겠다는 고 지부장은 2~3년 내에는 기르고 있는 암소 60여두 전체를 1+등급 이상의 혈통을 가진 암소로 교체해 ‘구남내’ 농장 브랜드를 전국에 알리고 싶은 야심찬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항상 정직하고 성실하게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겠다.”고 말하는 고 지부장은 지금처럼 한우값이 제값을 인정받지 못할 때 일수록 “한우농가는 좌절하지말고 꾸준한 노력으로 생산비를 줄이고 최고 등급의 한우를 생산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저능력 암소인 흑비경, 이모색, 8산이상의 노산우, 2등급 이하를 출현한 어미소를 이번 기회에 자율도태해 줄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