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읍 대리 임금재(82) 할머니

“난리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 그 때만 생각하믄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해 사람이 사람을 이유없이 죽이는 끔찍한 그런 세상 다신 없어야제”

오는 12일 광주에서도 상영 예정인 ‘오월애’는 5․18 광주항쟁을 지금껏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36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엔 항쟁의 중심에서 시민군과 아픔을 함께하며 80년 광주를 가장 광주답게 만든 주인공 이면서도 정작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잊혀져 가는 우리 이웃, 그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 더욱 감동을 자아낸다는 평이다.

실제로 광주항쟁은 도청에서 쓰러져간 시민군들의 고귀한 넋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한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의 숭고한 정신과 함께 아프게 자리하고 있다.

1980년 5월 어느 날. 당시 무안군 청계면 목포대 인근에서 ‘옥주식당’을 운영하던 임금재(화순읍 대리․여․82)할머니는 광목간 국도를 따라 진입해 오는 일련의 무장트럭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소총이며 각목 등을 손에 쥐고 목포를 향해 가고 있으며 광주의 소식을 시민들에게 알리려고 가는 중이며 인근에 있는 무기고 등지에서 필요한 소총 등을 얻기 위해 왔노라고 말했다.

임 할머니는 순간 ‘뭔가 큰일이 나도 단단히 났음’을 직감했다 한다.
그 때부터 임 할머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들에게 음식을 져다 날랐다. “그 땐 정말로 아무런 생각도 정신도 하나도 없었어. 왠지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어. 나도 나지만 지금은 돌아가셨을 영감님들조차 팔 걷고 나서서 음식을 나르느라 고생 참 많이 하셨어”라며 당시를 회고 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광주와 목포를 오가던 트럭의 행렬이 어느 날인가는 인근 파출소 앞에 멈춰서더란 것이다.

80년 5월 항쟁당시 시민군들에게 줄 음식을 마련해 나르고 있는 지역민들. 5.18 기념재단 제공

관공서 방화 앞장서 막다 허리 다쳐

“첨엔 청년들이 왜 저러나 싶었지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파출소며 면사무소에 불을 놓으러 가는 거 아니겠어!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지. 다 같이 좋은 세상 만들자고, 잘살아보자고 이 고생들 하고 있는디 이럼 안 된다고 말렸지” 무조건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는 임 할머니는 관공서 방화는 막아냈지만 이 실랑이 속에서 청년의 밀침을 받고 쓰러져 이날 이후 영영 허리를 못 쓰게 됐다.

남농 허건 선생 등 호남 뿐 아니라 전국의 유명 인사들이 주 고객이며 근동 어느 음식점도 견주지 못할 정도로 규모도 있고 이름도 날렸던 음식점이었노라고 회고하는 임 할머니 이로 인해 일 마저도 접어야 했다.

“첨엔 그저 삐끗했겠지 생각했는데 허리를 영 못 펴겠더라고” 임 할머니는 아픈걸 참고 참다가 15년이 지난 1995년에 가서야 수술을 받았다. “허리에 철심을 심어주데 그나마 그 덕에 이나마 걸어. 수술할 때도 면사무소에 얘길 하면 다만 얼마라도 혜택을 준다고 한다던 디 그런 돈은 나보다 더 절박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혜택을 받아야지 싶어 안 받았어”라며 손사래를 친다.

‘옥주식당’은 항쟁 기간과 항쟁이 끝난 후에도 시민군들의 피난처이자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광주에서 쫓겨 내려온 사람들 야밤에 배 태워 내려 보내고, 도망 댕기는 사람 숨겨주고 밥해 맥이고 그랬어. 그 때 생각 하믄 참 겁도 없었던 거 같아”라는 임 할머니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나가 원체 정이 많단 말이요”라고 짤막한 답변을 할 뿐이다.

보상금 한 푼 안 써, ‘사회 환원 하고파’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생활하고 있는 임 할머니는 정부에서 매달 지원하는 30여만 원 남짓의 생계보조비가 수입원의 전부다. 그럼에도 5․18 보상금으로 받은 4천 5백여만 원은 한 푼도 안 쓰고 있다.

“하루 세끼 먹을 것 다 먹고 있음 늙은이가 그걸로 족하지 뭐가 더 필요 하겄소”라며 “귀한 사람들 아까운 목숨 바쳐가며 받게 된 이 돈은 귀한 곳에 쓰여야 할 것 아니오”라며 지역에서 어렵게 공부하며 살고 있는 청년들의 장학금으로 쓰이길 원한다고.

임 할머니는 이러한 뜻을 내비치면서도 “그란디 혹시나 이 돈 때문에 나를 생계보호대상자에서 떨쳐불믄 어찌까라? 그랑께 어디가서 야그하지 마시쑈”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덧붙여 “나는 그나마 광주 얘기를 듣기만 했는디 그 때 희생된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 가족이나 부모 심정은 으짜겄소 참말 찢어지고도 모자랄 것인디 이깟 돈 몇 푼으로 치료는커녕 보상이 되겄소”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