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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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는 소월, 남쪽에는 영랑이다.”
맑고 깨끗한 순결의 심혼을 추구한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이다.
김영랑(1903~1950)의 본명은 김윤식이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영랑은 1919년 3·1운동때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간도 대지진때 귀국했다.
1930년 정지용, 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동인에 가입하여 여러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 무렵에 쓴 시이다.
1935년 첫번째 시집 《영랑시집》을 간행했다. 이후 두어 차례 붓을 꺾기도 했으나 해방 후에는 시 작품 활동에 전념하다가 고향 강진에서 제헌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수복 전투 중 서울을 탈출하지 못하고 포탄 파편에 맞아 47세의 아까운 생을 마쳤다.
그의 작품들은 목적의식이 담긴 시를 거부하고 이상적인 순수 서정시에 집중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시어 속에 흐르는 조용한 저항의식이 담긴 민족주의적 시를 쓰기도 했다. 주로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전라도의 향토색을 살린 섬세한 시적 표현을 사용했다.
특히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라는 시는 지상의 세계에서 천상의 세계, 즉 하늘을 동경하고 있는데, 구절 곳곳에서 유음(流音)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영랑의 시는 그만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시어와 섬세한 감각적 표현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는 그러한 특질이 잘 나타나 있다. 자신이 겪은 체험을 극도로 단순화시키면서 그것을 ‘내’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와 관련, 정한모 교수는 “영랑의 시세계는 한마디로 ‘내 마음의 세계’이다. 그가 외부 세계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다기 보다는 그것을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내면화하고 있다”며 “사람이란 맑은 눈과 밝은 귀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영랑이 잘 일깨워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영랑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때이다. 국어교과서에 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 소개되었다. 뭔지 모를 따뜻한 감동이 물결쳤다. 이내 난생 처음으로 스스로 시를 작성해 봤다. 당시 내가 썼던 글은 당시 나의 처지를 담아 빗대어 ‘자갈밭에서’라는 시를 쓴 기억이 있다.
한 사람의 시 한 수가 마음과 영혼을 맑게 살 찌우는가 하면 그날 하루 아니 평생의 마음속에 되뇌이며 살을 움켜쥐고 살게끔 하기도 한다. 특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각자 주어진 삶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의 충실성과 성실성에 의해 다른 사람의 삶이 변화되고 발전돼 나간다고 할 때, 영랑의 시가 나에게 끼친 영향은 아직도 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