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수 -정 지 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대하장편소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8권)에 정지용의 시를 인용한 부분의 “향수”가 나온다. 해방 전 만주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던 김범진이 해방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의 장교가 되어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가 인민군장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대적 상황이 그러했듯이 조선인으로서 일본 제국주의 관동군장교를 지냈던 친일세력들이 미군정하에 대부분 국군장교가 되어 승승장구 했지만 해방이후 광복군(독립운동가) 출신 장교들의 대부분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거나 그 대열에서 소외되어 시대적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시절 이였다. 그는 얼마간 고향을 점령하지만 미군의 반격으로 전세가 기울자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지리산자락에 숨어 지내며 빨치산으로 활동 한다.

그러던 중 가까운 고향에 계시던 부친이 돌아가시자 맏아들로써 장례를 지키지 못한 채 안타까운 심정으로 염상진과 그의 부하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고향집과 벌판이 내려 다 보이는 길목의 산등성이에 서서 멀리 아버지의 장례행사와 상여가 나가는 풍경을 지켜보며 슬픔에 젖은 채 지난 과거를 회상 한다. 이 부분에서 조정래 작가는 정지용시인의 詩 "향수"를 드라마틱하게 삽입한다. 10권으로 엮인 긴 장편소설은 시(향수)를 인용한 부분에서 느낀 감동과 여운은 누구나 고향에 어린 날 자란 "향수"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것 같다

정지용 은 190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으며 학창 시절 교지(휘문고보) 창간호의 발간부장이 되어 기획 편집한다. 1927년 <조선지광> 7월호에 발표된「풍랑몽」은 1922년 3월「마포 하류 현석리」에서 창작되어 그의 처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용의 작품가운데 창작연대와 장소가 기록된 것이 32편이고, 나머지 87편은 발표당시 기록하지 않고 있으며, 6편은 발표지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문학적 생애의 시작이 바로 휘문고보 시절이었는데 특히 다음과 같은 회고기는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요람』은 내 나이 16.9세 때 그 때 나는 법전 재학 중이었다. 문예에 뜻을 둔 7.8인의 동지들과 더불어 만들어 낸 등사판 문에 잡지이니, 이 요람 이란 이름은 기억이 확실치는 아니하나, 그 때 동인의 한 사람인 정지용의 생각으로 붙여졌을 듯싶다.

1929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 그는 학비를 제공한 모교 휘문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여 해방 후 이화여전 교수로 옮겨갈 때까지 주로 하급 학년의 영어만 가르칩니다.

1930년에<시문학>지 동인으로 참가하였고 <조선지광>에 그의 대표작인「유리창」(1930.1) 등 지금까지의 경향과는 달리 사물시를 많이 발표한다.

시의 대부분이 여행체험 그것도 금강산, 한라산 등의 등산체험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점도 두드러진다. 여행체험은 조선일보의 요청에 그 자신의 취미에서 생긴 것으로 시 뿐만 아니라 산문 특히 기행문으로 많이 발표되어 제2시집『백록담』(1941.9)에 집대성되는데 이 시기에 정지용은 명실상부하게 한국시단의 대표적 시인이 됩니다.<경향신문>(1946.10) 주간으로 취임하여 47년 8월까지 재임하다가 1948년 2월 이화여자대학를 사임하고는 녹번리 초당에서 서예를 즐기면서 소일하다가 1950. 6. 25. 당시 납북됩니다.

처음에는 서대문 형무소에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같이 수용되었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 되었다. 같이 납북되었다가 탈출한 계광순의 회고에 의하여 확실하게 밝혀졌다.

한약상을 경영했던 아버지 덕에 유복한 생활을 하며 지내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시이다.

그러나 불의로 닥친 홍수 피해로 갑자기 기울어진 가세 탓에 천재 시인 정지용은 어려움을 맞는다. 자신이 태어났던 충북 옥천 농가마을을 생각하며 쓴 시로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충북 옥천은 정지용시인의 고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정지용 향수라는 노래와 그의 생가를 찾는 이들과 거기에 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인 관광명소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