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친 듯 풍요로운 땅 남도
남도의 땅을 밟노라면 온 몸으로 느껴오는 것이 있다. 그곳에는 소박박하면서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이 있다. 너른 들과 거친 바다를 터전으로 한 독특한 개성이 서려 있고, 오랜 세월을 지켜온 역사와 문화가 있다. 걸쭉한 사투리 한 마디에 사람 사는 모습을 느끼게 해주는 애틋한 정이 있다.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고향처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남도가 마음을 이끈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먹든 무엇을 느끼든 그곳에서의 경험이 좋은 추억이 되어 일상을 풍요롭게 해준다. 가서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을 음미하며,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의 땅, 남도의 구수한 인정과 질박한 사투리를 찾아 길을 잡는다.

다산초당

◈ <내 마음 아실이> -北에는 소월 南에는 영랑-
내 마음을 아실이/내 혼 잣 마음 날같이 아실이/ 그래도 어데 나 계실 것이면/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 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푸른 밤 고히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여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 잣 마음 날같이 아실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 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사랑은 타기도 하오련 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 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 잣 마음을/

이 시는 가정(假定)과 자문자답의 형태로 자신을 알아 줄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잘 다듬어진 시어와 적절한 도치법의 사용으로 여성적 정감이 물씬 풍긴다. 이 작품의 주제는 그리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그의 내면세계에 안개와 같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김소월, 한용운의 님과는 차이가 있음)

이 시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타인과 함께 나눌 수 없는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는 안타까운 내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시는 음악성과 심상도 매우 중요시한 작품이다. 음악적 효과를 위하여 어떤 언어를 선택했으며 어떤 기법으로 심상화 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1930년대 <시문학파>의 성격인 섬세한 언어 감각과 그윽한 서정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투명한 정서와 조탁(彫琢)된 시어와 음악성이 잘 드러나 있다. 영랑 김윤식은 1930년 박용철, 정지용, 이하응, 정인보 등과<시문학>동인지를 만들면서 부터 작품을 발표한다.

그는 <내 마음 아실이> 같은 향토색 물씬 풍기는 영롱한 서정시로 이름을 얻어 “北의 소월 南의 영랑”이라는 말과 함께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모란이 피기까지는>에는 건전한 민족정서인 기다림과 슬픔이 담겨있다. 모란이 지고 말면 잃어버린 설움도 있지만 작가는 잃어버린 슬픔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찬란한 기다림이 있는 것이다.

영랑은 그 생애를 통해서 8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 중 60편 정도를 강진의 동백 대나무 가득한 남성리 집에서 썼다. 영랑생가는 강진읍 남성리 211번지에 위치해 있다. 동산 중턱 양지 바른쪽 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터에서 본채와 사랑채 2동만이 남아있고 주변에는 모란 밭이 남아있어 천하의 한량이던 영랑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김영랑 생가

영랑은 강진에서 5백석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휘문고보를 다니다가 3·1운동에 가담하여 그로 인해 6개월간 복역을 한다. 출옥 후 상류층들이 다닌 유명한 일본 동경 청산학원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1923년 방학 때 잠시 귀국한 사이 관동대지진 소식을 듣고는 학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 다산학의 산실 불후의 대학자
탐진강의 하류가 흘러들어 바다와 한데 어울려진 강진만은 예부터 석화와 바지락 고막 등 바다자원이 더없이 풍요롭기로 소문난 어장이다. 바다도 세월 따라 그 모습이 변해 육지 깊숙이 파고든 강진만은 물길이 막히고 갈대숲에 뭍으로 변한 강가가 되어버렸다.

강진만에 기댄 남녘의 포구는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안고 만덕산(萬德山)이 뻗어 있다. 만덕산에서 시작된 산줄기는 해남과 두륜산과 연결돼 땅 끝 마을까지 이어지며 승경을 낳는다. 이 만덕산 기슭에 다산 초당과 백련사 그리고 옥련사가 있다. 한국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실학의 거물 정약용은 이곳 강진에서18년의 유배생활 동안 그의 학문과 사상을 집대성 하였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다산 초당은 강진읍에서 약 8Km떨어져 있다. 다산 초당의 길목인 구강(九江)포구는 간척사업이 완성되어 전국에 관광객이 쉼 없이 몰려들고 있어 휴일이면 둑길이 3천여 명의 승용차로 메워지고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다며 한적한 포구 마을은 기쁨에 찬 표정이다.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교동 주차장은 평일인데도 외지의 탐방객들로 북적인다. 다산 초당은 마을 뒤쪽 다산(茶山)에 있다 .만덕산 줄기의 산자락 이름에서 정약용의 아호가 생긴 것이다. 초당에 이르는 길은 대나무와 소나무 등으로 덮어 있다.

다산은 강진에 유배 온지 8년 만에 강진읍 내 주막거리인 사의제(四宜齊)에서 거처를 다산초당으로 옮긴다. 47세 때인 1808년이었다. 그는 동암과 서암을 수리하여 수천의 전적들을 쌓아두고 저술과 창작에 몰두하기 10년 경제유표 목민심서 등 대표적인 책들을 썼을 뿐 아니라 다산학이라고 통칭되는 그의 학문적 체계를 완성한다. 배소의 아픔과 좌절을 딛고서 높은 학문의 세계를 열어 불후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것이다. 3월의 변덕스런 날씨인데도 남쪽나라는 마냥 햇살이 따스하다.

◈ 민중과 함께 한 백련결사의 도량
13세기 초 정권을 장악한 무신정권은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받쳐줄 사상을 재정비하게 되는데 여기에 부흥했던 불교계의 동향이 이른바 결사(結社)운동이다. 훗날 보조국사 지눌이 송광사에서 결성한 수선사(修禪寺)는 그 대표적인 것인데 수선결사가 친체제적인 성향을 보여주게 되자 이에 대하여 새로운 결사운동으로 일어난 것이 바로 백련결사였다.

백련사

백련결사는 지눌의 친구인 원묘 국사 요세(1163-1245)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것을 그는 한때 보조국사의 권유로 수선사에서 조계종을 수행하다가 1208년 수선사와 결별하고 강진 약사암에 머물면서 대중과 함께 참회수행을 하였다. 이때 탐진현(강진)신도들의 권유로 만덕사(백련사)로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당시 요세(了世 1211-1216년)는 80여 칸 되는 가람을 짓고 보현도량을 얻어 중생의 구도를 계속하여 마침내 1236년에<백련결사문>를 발표하여 고려 불교계의 새로운 혁신기풍을 마련하였다. 백련결사는 고려 후기 불교 결사운동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참회와 정토’를 강조하면서 일반 민중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수줍은 듯 머금은 동백꽃은 다산 초당과 1km 가량 떨어져 있다. 백련사는 고려시대 진보적 승려들의 종교개혁 운동을 이끈 신앙결사체의 대표적 가람으로 꼽힌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백련결사는 고려가 원(元)나라에 복속되자 나라의 운명과 함께 허무하게 그 막을 내렸고 그 뒤에 왜구들의 약탈로 황폐화 된다. 지금의 절은 조선후기에 자그마한 절로 중창됐다. 백련사는 남해바다 초봄의 햇살이 가득하다.

다도해가 눈앞에 펼쳐지고 강진만 저쪽으로 칠량옹기 마을들이 보인다. 절 입구 1.3ha에 집중적으로 자생하는 동백 숲 사이로 아름드리 비자 후박나무가 섞어 사철 푸른 숲을 이룬다. 1월 초순부터 붉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해 꽃잎이 피고 지기를 거듭하면서 2-3월에 절정을 이르고 5월에 까지 붉은 꽃밭으로 떨어진 꽃잎마저 드러누워 유혹을 한다.

이곳 동백나무는 여느 지역보다 키가 커서 보통 6-8m, 크게는 10m에 이른다. 백련사 앞 뒤뜰과 주변 산록에는 아름드리 고목의 동백나무가 활엽수림 가운데 접접이 박혀 있다. 짙은 초록색깔 푸른 청춘으로 지난 한 겨울을 넘긴 것이다.

◈ 동쪽은 순천(順天) 서쪽은 강진의 음식 맛 최고
기름진 군동평야를 적시면서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는 탐진강은 강진의 젖줄이다. 강진의 해산물은 대합 바지락 고막 맛 굴 게 뱀장어 망둥어 새우 감채 등이 있고 깨끗하고 맑은 물에만 사는 은어는 탐진강이 서식의 최적지다. 특히 탐진강에서의 은어 낚시는 일품이며 석교(石橋)에는 선인들의 낚시터인 조대(釣臺)라는 큰 바윗돌이 남아있다.

청정해역(淸淨海域)인 강진만은 바지락과 고막 등 폐류의 맛이 좋기로 이름이 나있으며 종패(種貝)로도 유명하다. 장어요리는 목리교 부근이 일품이며 이곳은 아홉 골의 물이 모인다는 구강포로 <구강어화>는 금능팔경(金陵八景)이라 일컬어 왔다. 해태 식당은 강진에서 이사를 하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