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 말동하여라

봄은 왔건만 눈발은 봄이 아니다. “매화 옛 등걸에 봄철이 찾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직도 하다마는, 춘설이 하 분분하니 필동 말동 하여라” 평양의 어느 기생이 춘설에 매화꽃을 보며 읊은 한수의 시가 멋지지 않은가.

섬진강 여행은 대중교통보다 승용차를 이용해야 제 멋을 느낄 수 있다. 화순에서 주암 방면으로 가다보면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압록다리가 나온다. 두 물줄기가 합수된 곳에서 국도를 따라 구례로 들어간다. 구례를 지나 구례동중 앞 양편으로 나누어진 길에서 하동 송림까지 나들이가 계속된다.

노란 산수유 꽃은 자지러지듯 피어 마치 봄의 소식이라도 전하듯 조잘대는 것에서 봄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유달리 눈도 많이 내리고 추웠던 겨울이었다. 그럴수록 하루라도 일찍 푸른 새싹이 돋아나길 바라는 마음은 봄이 우리에게 새로움을 안겨 줄 것이라는 희망으로 보인다.

곳곳에 마을을 거느리며 유장함을 자랑하는 섬진강

전북 진안에서 발원하여 3개 도와 12개 군을 넘나들며 500리 길을 흐르는 섬진강. 산과 산들이 만들어낸 계곡을 굽이돌며 작은 마을들을 곳곳에 거느리고 평화롭게 때론 굽이쳐 부서지고 어쩔 때는 유장함을 자랑하며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지만 태백산맥에 울고 지리산에 피멍 들었던 설움의 강이기도 하다.

김용택 ‘섬진강’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 보라/ 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살 밥 같은 토끼풀 꽃/숯불 같은 자운영 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풀에/어둠을 끌어다 죽이며/그을린 이마 훤하게/꽃등도 달아준다

◇ 광양 다압마을
3월 중순 섬진강 나루에 핀 하얀 매화꽃의 은근한 향기는 우리로 하여금 가장 먼저 봄의 기운과 정취를 느끼게 한다. 예로부터 매화는 고결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사군자중 하나고, 흐트러짐 없는 자태로 추운 겨울도 잘 견딘다하여 세한삼우라 불린다.

산 비탈의 매화와 초가지붕이 멋스러운 다압마을

섬진강 하류의 광양 다압 마을은 오래 전부터 매화 마을로 유명하다. 보통 3월 둘째 주면 길가나 산비탈이 온통 매화로 뒤덮이고 한창때는 눈이 소복이 쌓인 초가지붕 하나가 산중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의 매화는 1940년 김오천씨가 처음 재배했다. 이어 한 집 두 집 재배하기 시작해 마을 전체가 매화 재배지가 되었고 곧 한 마을이 관광지를 이루었다.

이 마을의 볼거리는 비단 매화꽃 뿐 만이 아니다. 산길 구릉을 따라 걷다 보면 눈길 속 오솔길 같은 ‘천년학’을 촬영한 세트장이 나오고 더 올라가 보이는 지리산자락은 가히 절경이 아닐 수 없다. 또 내려오는 길에 늘어선 매화 장독대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대략 1천 400여 개 되는데 감히 세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숫자이다. 보기만 해도 뿌듯해지는 장독대의 주인인 매실 명인 홍쌍리 여사는 “저 것 땜에 내 얼굴이 주름지고 허리가 다 휘었다”고 하면서 매실장아찌를 이쑤시개로 콕 찍어주는데 그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 박경리가 쓴 소설 속 마을
섬진강을 따라 광양과 하동을 가르는 다리와 검문소를 지나 쌍계사 쪽으로 가다보면 박경리가 쓴 소설 ‘토지’의 주인공 서희가 사는 악양 평사리의 민속마을이 나온다.

악양 평사리 민속마을은 소설 ‘토지’ 때문에 하동군에서 조성한 마을이자 드라마 ‘토지’의 촬영지이다. 최 참판 댁 한옥을 중심으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초가집을 재현해 내고 있는데 마을 한 바퀴를 돌다보면 자연스레 일제 강점기 당시의 생활상이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최 참판 댁의 앞마당 뜰과 연못 풍경이 빼어나고 또 집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대나무 숲의 운치 또한 대단하다.


더불어 드라마 세트장 저작거리 구경과 기름진 악양 벌판, 섬진강 백사장에 펼쳐진 ‘평사낙안’을 둘러보고 봄나들이 기념사진 한 장 남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토지의 저자 박경리는 정작 이곳 악양 평사리 마을에 한 번도 들린 적이 없는데 소설 속 테마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 청소년을 위한 꽃구경 준비는 어떨까
섬진강을 따라 물 흐르듯이 나선 매화꽃 마을과 토지의 배경인 민속 마을 봄나들이는 잘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꽃구경 그 어디에 가도 우리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느 지역에 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우리는 매스컴이 청소년들의 범죄와 비행으로 떠들 썩 할 때 마다 1등만 알아주는 세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물론 1등을 칭찬하고 치켜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꼴찌라 소외받고 문제아라 낙인찍힌 청소년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위해선 청소년을 위한 시설이 우선적으로 세워지고 일등에게 주는 장학금만 큼이나 꼴찌 소위 문제아라고 하는 이들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청소년 모두가 건강하고 밝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의 여왕 김연아의 4분9초 연기를 보았는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행복을 주고 희망을 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 브랜드의 가치를 높였다. 이처럼 관심에서 시작한 교육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만이 아니라 개인의 종합적 능력을 길러 주기도 한다.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고향의 추억이 사라져 가고 있다. 사람들의 정서가 고향의 흙이 아닌 시멘트나 돌가루로 덮어져 가고 있다. 전국의 논과 밭을 개간하고 산모퉁이를 잘라내서 어디를 간들 그 고장만의 특징이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그래서일까 지역마다 내세우는 관광 상품도 다 비슷하다. 고장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신선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가보고 싶은 고장 또는 나들이 한 번 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고장이 되어야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데 쏟을 힘이 없다. 고장을 브랜드화 하여 가치를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