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숙 학교폭력상담자원봉사자

여성이 성(性)에 대한 자유로운 이야기를 용납할 수 있는 나이가 되는 건 오십 이후 정도일 것이다. 그 나이가 되면 비교적 유머 비슷한 것에 대해 웃어넘길 줄 아는 연륜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도 예(禮)를 차리고 하는 우스갯 소리 정도의 선이다. 에스토로겐이 적어져 중성화가 되는 나이가 되기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은 성에 대한 노이로제와 강박 속에 살아간다.

여성은 직장과 사회에서 숱하게 성에 대한 농담을 듣는다. 배짱이라도 좋으면 맞서련만 대부분 남성들의 고정관념에서 기이하고 퇴폐적이며 원색적인 용어 앞에서 꼼짝 못하고 당한다. 공공의 장소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럴 때면 낯이 뜨거워지거나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진다. 그것은 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 여성들은 그만큼 암암리에 성에 대한 스트레스가 존재하는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거기에 비해 성범죄는 너무나 가볍다. 외국의 무기징역이나 전자팔찌, 화학적 거세법 이런 것에 비추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죄에 대한 형평 논리에 어긋나는 무게이다. 여성이 당한 평생 무게에 비하면 그 저울추는 정말 말도 안 되게 기울어진다.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여성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전쟁의 상처만큼이나 크고 깊다.

부산의 실종 여중생은 성폭행 후 질식사 했고 그 영결식이 치러졌다. 고통을 안고 죽은 여중생과 그 가족들의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언어의 한계 때문에 차마 그 정신적인 외상을 전부 표현할 수조차 없다. 표현한다는 것은 뭔가 정리가 되어야 가능한데 절대, 어떤 언어로든 그 고통은 정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정리될 수 있다면 다만 타자(他者)들만이 가능하다. 여성이 아닌, 그 고통에 대해 감정이입하여 공감을 나눌 수 없는 타자들에 의해서만이 말해질 수 있다.

국민은 국가의 의무에 충실한 지침 위에서 삶의 기반을 편다. 그러면 국가로서도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당연한 의무가 있다. 국민의 첫 번째 행복인 안전이 그것이다. 최소한 내가 사는 곳에서 자유롭게 다닐 권리가 있으며 밤길을 다닐 때 불안에 떨지 않아야 한다. 여대생이 밤길을 마음 편히 걸을 수 있고, 여자 아이들만 놀아도 전혀 걱정 없고, 여고생이 밤에 다닌다고 발 동동 굴리는 그런 세상은 안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세상이다.

이 땅 남성들의 어머니는 모두 여성이다. 또한 남성들의 딸 역시 여성이다. 여성이 행복하다면 남성은 당연히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내 즐거움만 찾자고 여전히 성을 농담으로 쓰는 한 풍토는 달라질 수 없다. 내 자녀만 아니면 괜찮겠지, 이런 논리도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만들지 않는다면 평화로운 미래는 요원하다. 스스로 정화되지 않는다면 남이 나를 위해 기꺼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들부터 여성 비하 발언을 하거나 성을 매개로 하는 농담은 사절하자. 성은 상품화 될 수도 없거니와 최고로 존중되어야 할 가치이다. 또한 누군가 함부로 침범해서도 안 되는 인권이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모든 여성들의 소망이다.

‘대지’를 쓴 펄벅 여사는 소의 짐을 대신 지고 가는 시골 농부를 보고, 그 흔한 광경하나로 더 볼 것 없이 대한민국을 다 알았다고 말했다. 그런 나라라면 당연히 행복한 곳이라고 했다. 나누어지는 짐이 있는 한 살만한 땅이다. 화순군은 남성이 나누어지는 짐으로 인해 여성이 행복한 땅이 되려 한다. 그 짐을 기꺼이, 당연하게 나누어지려는 남성들에게 인간의 우정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 이 땅의 여성이 행복하다면 분명 남성은 행복하다. 그런 세상이 되는 마법이 여기 화순에서 꽃 피고 열매를 맺을 예정이다.


학교폭력상담자원봉사자 류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