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 양한묵 지사

◇3.1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우리 민족사에 3.1독립운동, 88올림픽, 2002월드컵처럼 국민의 총합적 단결로 만세와 태극기를 흔들며 국민적 역량과 발산의 에너지를 총집결한 적은 없었으리라.

민족대표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3.1운동은 1919년 1월 22일 갑작스럽게 발생한 고종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68세로 평소 건강한 고종이 1월21일 갑자기 중병에 걸려 이튿날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2천만 동포들은 망국의 설움 속에 비통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의아해 했다.

항간에는 일제의 사주를 받은 한상학이 고종의 식혜에 독을 넣어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고종이 1월 21일 밤 식혜를 들고 나서 “내가 무슨 음식을 먹었길래 이러냐”고 부르짖으며 갑자기 죽었는데 두 눈이 붉고 온몸에 붉은 반점이 돋았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민중들이 더욱 격분한 것이다.

나라와 임금을 잃은 설움으로 치를 떨던 민중들에게 있어 고종의 장례식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남녀, 노소 팔을 걷어붙이고 거리로,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은 3월1일 2시 탑골공원 부근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이들은 미리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대표 중 한용운이 “오늘은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는 매우 영광스러운 날”이라는 요지의 인사말과 함께 ‘독립만세’를 삼창으로 간단히 독립선언식을 마쳤다.

곧 이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전원 연행되었지만 이들의 함성은 들불처럼 번지며 전국 방방 곳곳 울리지 않은 곳이 없었고 우리민족은 나라를 빼앗긴지 10년 만에 기쁨과 희망을 맛보았다.

한편 3.1운동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탑골공원의 만세 시위는 3월1일 2시30분경에 시작되었다. 미리 연락을 받고 모인 학생들과 시민들 앞에서 학생 대표 정재용이 2천 6백 여자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낭독이 끝나자 집회에 모인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들은 ‘대한독립만세’, ‘조선독립만세’의 구호를 외치며 시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학생들과 시민들은 만세를 연창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이 “조선은 지금 독립하려 한다.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권유하자 고종의 국장을 보러온 지방민들이 합세하여 수만 명을 헤아렸다.

◇우리 고장의 양한묵 지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1운동 당시 유일하게 옥사한 지강(芝江) 양한묵(梁漢黙1862-1919) 선생이 서울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가 천도교회의 주선으로 선영이 위치한 화순 도곡 앵남(전남학숙 뒤편)으로 안장됨을 알리는 기사가 동아일보(1922. 5. 5)에 게재되었다. 그 이튿날에도 같은 신문의 1면 기사에서는 양한묵의 반장(返葬)을 다루고 있다.

차츰 잊혀져 가는 3.1운동을 다시 한 번 회상케 하고 억울하게 운명을 달리한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배려가 투영된 듯, 신문 기사는 자못 비감조였다. 양한묵은 33인의 한사람이자 전남 출신으로 천도교 계통이었다. 그는 1910년대 천도교 교세확장과 아울러 각종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지만 그의 행적은 생각만큼 널리 알려져 잊지 않다.

지강은 남녘땅 해남의 옥천면 영계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10대 조부가 능주에서 해남으로 이거한 후 그의 집안은 3백 여년을 해남 땅에서 살아왔다. 그의 부모는 양한묵의 나이 19세에 능주(陵州)로 이사를 하였는데, 이사(移徙)의 이유는 잘 알 수가 없다. 지강이 화순에 인연을 맺은 것은 1894년 탁지부 주사(度支部 主事 지금의 세무서 관리)가 되어 능주에서 4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다.

이때부터 그는 스스로 화순출신이라 말해 왔는데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선조들이 일찍부터 대대로 살아온 곳이 바로 능주였기 때문 이였을 것이다. 그는 열여덟 살 때부터 불교와 도교, 仙書뿐만 아니라 천주교 서적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그는 다양한 사고와 폭넓은 학문의 세계를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

◇천도교를 통한 민족의 구원자 양한묵
지강 양한묵 선생은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측근으로서 소임을 다하였다. 그는 천도교 신자의 다섯 가지 의무(侍日 祝文 淸水 誠米 祝禱 )를 제정하였고 신도 자제를 위한 교리 강습소와 사범강습소의 설치, 『천도교회 월보』의 간행, 그리고 보성중, 보성전문(현 고려대 전신), 동덕여학교 등의 학교를 열어 인재양성 등에 힘을 쏟았다.

특히 그는 천도교 교리의 해설에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였다. 천도교의 헌법인 대헌을 작성하였으며 “하늘이 곧 사람이다.(人乃天 )”라는 천도교 교리의 핵심사상 역시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그는『천도교회 월보』의 교리부 난에 천도교의 교리 해설을 자주 게재하여 일반인의 이해를 도왔던 것이다. 예컨대 천도교(天道敎)가 유.불.선 삼교의 삼일한 종교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밝힌바 있으며 성미(誠米)에 대해서도 매우 이해하기 쉽게 그 제정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민족대표 33인 중 유일하게 옥중 순국한 양한묵 지사
3.1 독립선언 이후 양한묵 등 민족 대표 33인은 모두 감옥에 갇혀 혹독한 고문을 감내하며 일제의 취조에 응해야 했다. 그의 나이 어느덧 쉰여덟 해가 가고 있었다. 이따금 면회 오는 아들 편에 “몸과 마음이 편안하니 너는 근심하지 말라”는 쪽지를 적어 보내기도 하였다. 가족의 걱정을 덜기 위한 그의 세심한 배려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예심을 받던 5월 26일 한 줌의 빛도 들지 않는 옥중에서 숨 가쁘게 살아온 생애를 마감하였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이다. 33인 중 유일한 전남 출신 양한묵은 그렇게 옥중 순국자가 되었다. 그 역시 동학 교단의 초기 지도자들처럼 외세의 폭력에 희생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영혼은 동학의 교주인 수은과 해월선생 그리고 녹두장군과 김개남 손화중 등에 의해 편안히 인도 되었으리라. 그는 천도교의 발전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른 불사조였다. 우리의 가슴에는 그의 온화한 얼굴과 행적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그의 조국 광복을 향한 불꽃은 영원히 후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현재 광덕리 군민회관 뒤뜰에 양한묵 선생의 추모비가 서 있는데 월탄 박종화의 글을 새겨 화순군민이 건립한 이 비에는『우리 겨레의 얼이시고 화순고장의 빛이신 선생은 이미 가시었으나 영원히 살아』라고 표기하였다.

지강 양한묵 선생의 순국비

◇우리는 왜 만세를 불렀을까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이후로 민중은 하루도 자유와 평화를 잊은 적이 없다. 이러한 우리의 의지가 한순간에 폭발했으니 그것이 바로 3.1운동이다. 지금까지 이처럼 우리민족이 일치단결하여 간악한 적과 피로 싸운 적은 없었다. 남과여,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흘린 피가 길에 가득하였으니 용기는 더욱 떨치고 기세는 한층 장열 하였다.

바다 건너 해외에서, 깊은 산골 골짜기에서 만세를 외치며 앞 다투어 죽기를 두려워하는 이가 없었으니 3.1운동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의 반일정신과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따라서 3.1운동은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봉우리이다.

우리가 왜 이처럼 일어났는가? 한일합병이후 일제의 간악한 통치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추구하였는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왕조국가로 돌아가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3.1운동은 한민족의 부흥과 재생을 위한 운동이다. 반드시 반일 독립하겠다는 것이고 반드시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세상과 국가를 만들겠다고 일어선 것이다.

3.1의 아들 딸 들인 동포여!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흘린 선조들의 피를 잊지 말자. 눈물을 잊지 말자. 그날의 함성을 가슴에 새기고 자랑스러운 이 나라를 위해 민족혼을 불사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