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 송광사

한국 불교계의 삼보(佛·法·僧) 사찰은 양산통도사, 합천해인사, 순천송광사를 말한다. 송광사는 16국사(國師)가 탄생한 사찰이다. 한국 대표사찰 송광사(松廣寺)는 조계종의 본산이며 선암사(仙巖寺)는 태고종의 본산이다. 어는 절에 간들 이런 명당에 자리 잡은 사찰을 보기란 쉽지는 않다.

이런 송광사를 세운 인물이 화순출신의 진각국사이다. 부처샘의 맑은 물에 떠 있는 오이를 먹고 태몽을 하여 잉태했다는 인물이 바로 그이며 요사이엔 새로 바뀐 주소명으로 인해 진각로란 거리도 생겨났다.

그런데 그 샘터가 우물터에 쓰레기만 가득하며 세워진 팔각정마저 어디론가 치워버렸다. 누가 그렇게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허물고 고치고 치워버리려는 발상을 하는지 주민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문화재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심성이 어떨까 걱정이 된다.

군민공원에 군민회관을 지어버리는 현실 앞에 예로부터 얼마나 산수가 좋았으면 열 고랑의 물이 모아진다 하여 세운 십정(十井) 탑이 무색하다. 연못을 메워서 읍사무소를 짓는 발상도 오늘에 보면 참으로 우습다. 새마을 운동이다 뭐다 하면서 연못을 메워 읍사무소를 세우고 군민회관을 짓고 활터를 만들고… 자꾸만 헐어내기만 할뿐 다듬지는 못한다.

화순전남대 병원 앞 동산이 화순을 찾아온 손님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어서 빨리 공원이 되어야 함에도 여태 지지 부진인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려의 불교
불교는 인도에서 씨앗을 뿌렸지만 1600년 전 인도와 툰황지역,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해동불교가 되었다. 한국불교를 인도나 중국불교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듯이 문화란 그 나라에서 300년 이상 함께하면 자기나라의 것이 되는 것이다. 중국 공자의 유학도 성리학, 양명학, 실학으로 개혁되면서 해동유교로 정착된 것에서 볼 수 있듯 언제나 역사는 창업, 수성, 개혁을 해야만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는데 이를 법고창신(法故創新)이라 한다.

고려시대에는 개경 중심의 귀족불교가 세속적이고 타락해 가는 것에 반발하여 지방에서부터 불교개혁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일어난 이러한 불교개혁 운동은 당시 타락한 불교계의 풍토를 정화하는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불교 교리상으로 큰 발전을 가져 옴으로써 오늘날 한국 불교의 기반을 마련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된다.

고려시대 불교개혁 운동에서 강진 백련사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송광사

이 불교개혁 운동의 중심지로 쌍벽을 이루는 곳이 바로 조계종의 본산인 순천 수선사(현 송광사)와 천태종의 강진 백련사이다. 이들은 고려 후기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성격의 신앙결사를 조직해 양대 산맥을 이뤘다.

그러면 왜 전남지역이 그 중심지가 됐을까. 학계에서는 신라말과 고려초 선종의 싹을 띄운 발원지가 이 지역이었던 점과 무신난 이후 정권을 잡았던 최씨(崔氏)정권의 경제적 토대가 전남지역에 집중된 점, 또 무신정권기에 호남지역 출신들의 정계진출이 두드러진 점 등을 그 배경으로 들고 있다.

무신난(1170)을 기점으로 고려사회는 크게 변화 되었다. 무신세력이 권력을 잡으면서 문신귀족이 몰락하고 왕실의 비호와 문신귀족의 후원을 받았던 불교 교종세력은 쇠퇴해 갔다. 대신 신라 말에 뿌리를 내리며 번성했던 선종 세력이 무신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교종(敎宗)은 주로 경전탐구를 통한 이론을, 선종(禪宗)은 참선수행을 중시하는 종파이다. 무신들은 지금까지 명맥만을 유지해온 산중 고찰을 후원 선종 세력 부흥에 나섰고 고려 후기 불교개혁운동을 주도한 백련사나 수선사의 결사도 이러한 추세 속에 결속되었다.

최씨 정권과 송광사의 성장
수선사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결선한 정혜사(定慧社) 결사운동의 중심지이다. 경북 영천군 팔공 ‘거조사’에서 1190년(명종 20년) ‘정혜결사문’을 반포한 지눌은 거조사가 너무 좁아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어렵게 되자 20년 후인 1200년 정혜사를 송광산의 길상사(吉祥寺)로 옮기게 된다.

이후 지눌은 정혜사를 수선사로 이름을 고쳤으며(당시 송광사로 불림) 무신집권기동안 최씨 정권의 적극적 후원에 힘입어 경제력이 막강한 대규모 사원으로 성장, 고려시대에 15명의 국사를 배출하는 대사찰이 되었다.

지눌이 정혜결사에서 주장한 이론은 일심, 즉 자기의 마음이 부처임을 깨닫는 것이 진리의 목적이며 이를 위해 참선수행하자는 것이다. 지눌은 불교 수행의 핵심적 두 요소로 선정(禪定,참선)과 지혜를 함께 닦자는 의미의 정혜쌍수(定慧雙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제시했다. 돈오란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는 것이며, 점수는 그것을 깨달은 뒤에도 참선이나 경전을 통해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눌은 정혜쌍수(선종과 교종을 통일시켜 수행한다는 뜻)의 실천 방법으로 돈오점수를 주장했으며 禪宗이 주가 되어 敎宗을 결합시키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敎禪의 절충적 단계를 뛰어넘는 敎禪一致의 독특한 哲學世界를 마련한 것이다.

천태종의 강진 백련사

한편 강진의 백련사는 1216년 원묘국사 요세(了世)에 의해 조직(1232-1236년) 결사 되었다. 요세는 처음에 지눌의 수선사에 참여했다가 사상적 차이로 조계선에서 참회수행을 강조하는 천태교관으로 되돌아가 강진 만덕산으로 옮겨 백련사를 조직했다. 만덕산으로 옮긴 것은 탐진(강진)의 토호들로 보이는 최홍, 이인천 등의 권유와 후원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지눌이 돈오점수한 후에도 꾸준히 경전읽기와 참선수행을 강조한 것과 달리 요세는 별명이 ‘서참회’로 불릴 만큼 법화경 경전에 의한 참회행과 정토를 주창했다. 요세에 의하면 생활 속에서 ‘나무아미타불’같은 염불만을 외우고 꾸준히 수행하면 누구나 서방정토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타락한 중앙 불교에 맞선 지방 불교
참선에 기본을 두고 있긴 하나 양자의 이러한 입장 차이는 교화의 대상인 衆生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보느냐에 따른 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요세는 교화대상으로 ‘죄의 입장이 깊고 두터워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해탈할 수 없는 나약한 범부’를 의식했던 데 비해 지눌은 ‘최소한 지혜력(경전독해력) 정도를 가진 스스로 발심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다.

이런 불교개혁 운동이 이곳 전남지방에서 쌍벽을 이뤘던 것은 타락한 불교에 물든 중앙의 왕족과 귀족보다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방이 더 유리했으며 또 다른 지방보다는 선종의 싹을 틔운 전남지역이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호남불교의 전통속에 일어난 수선사와 백련사의 불교개혁운동은 몽고와의 전쟁 와중에서 서민대중을 규합하는 정신적 토대는 물론 오늘날 한국불교의 기반을 마련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불교개혁운동의 중심지가 ‘왜 전남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문제는 불교계와 향토사학자들의 몫이라고 본다.

화순에도 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고 지역문화와 향토사를 연구해 가는 역사연구소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