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군민신문은 창간 13주년 특별기획으로 군민들과 인연이 깊은 출향 인사들을 찾아 그동안의 쌓인 소식과 나누지 못한 정담을 향우들과 지역민들에게 전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사회 각계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의 꿈을 이룬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좋은 삶의 나침반이 되리라 믿는다.<편집자 주>

<동전 한 닢>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길바닥에 버려진 동전 한 닢
조심스럽게 주워들었습니다.

흙속에 묻혀 삭아들지 않고
발바닥에 밟혀
누그러들지 않고
차바퀴에 깔려 오그라들지 않고

길바닥에 버려진
동전 한 닢
정성껏 닦고 닦아 빛을 냈습니다.

따스한 손바닥에 꼭 쥐고
밟히고 깔려 멍이 들었을
아픔을 감싸 주었습니다.

지은이:허형만 시인(목포대교수)

허형만 시인

◇<동전 한 닢>이라는 시가 바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며 허 시인을 세상에 알린 작품 아닌가요?
-예. 그렇습니다. 6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국문과 교수이면서 동시에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 자리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요?
-한국시인협회는 가장 오랜 역사와 정통성이 있는 단체로서 현재 회원이 1천 3백여 명입니다. 한국시인협회는 회장과 부회장 급 위원장이 3명인데요, 그 중 심의위원장 자리가 수석 부회장인 셈입니다. 그 자리는 회장님을 보필하면서 협회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자리이지요. 과거엔 심의위원장이 임기가 끝나면 으레 다음 회장으로 올라갔습니다만, 최근에는 과거 회장을 지내신 분들로 구성된 평의회에서 회장을 선출하고 있지요.

◇작년 ‘영랑시문학상’ 수상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영랑시문학상은 이 지역 시인으로는 최고 영예로운 상이라고 보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영랑시문학상’은 이름 그대로 1930년대 한국 순수시의 분수령을 이룬 강진 출생 영랑 김윤식 시인의 시 정신을 기리는 상입니다. 작년에 제가 제7회째 수상했는데요, 그 동안 고은, 김남조, 송수권, 신달자 등 한국 시단을 대표하시는 분들이 수상해 오셨습니다. 저에게 이 큰 상이 오게 된 것은 제가 그만한 자격이 되어서라기보다는 제가 박사학위 논문을 김영랑으로 썼고, 저의 시세계가 남도적 가락과 서정의 깊이라는 측면에서 선전되었던 것 같습니다. 소감이야 물론 기쁘기 그지없었지요.

◇허 시인은 평론가들에 의하면 다형 김현승 시인의 기독교적인 시의 계보를 잇는다고 보던데요, 본인도 여기에 동의하시는지요?
-예. 저는 유년 주일학교 출신으로 저의 시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시집 <풀잎이 하나님에게>나 <이 어둠 속에 쭈그려 앉아> 등은 특히 기독교적 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시집들이지요. 그래서 한국크리스찬문협상도 수상 했구요. 그러고 보면 아무래도 스승이신 다형 선생님의 영향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 그 당시 토속적이고 서정적이었기 때문에 시 정신면에서는 다형 선생님을 도저히 따를 수는 없는 거지요.

◇문병란 시인 제자로, 그리고 순천고등학교 시절 한 반의 짝꿍 시인으로 유명 하던데. 짝꿍 시인의 큰딸 주례를 서줄 정도로 서로가 우정의 교분이 깊다고 하던데요?
-그래요. 지금 인터뷰를 하고 계시는 리경재 시인과는 둘 다 서은 문병란 선생님 제자로서 자랑스럽지요. 순천고등학교 시절 문학동아리〈씨끄라맨〉으로 명성을 얻었고 훗날 교직에 몸담아 세상을 정결하게 살려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변함없는 우정으로 오늘에 이르러 이렇게 나이 벌써 육십 중반에 들었네요. 리경재 시인 큰따님 주례 설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늙었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말입니다. 허-허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구름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이루어야 할 꿈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인생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싶은가요. 아주 시적인 말이 기대 됩니다.
-글쎄요. 시적인 말이 어디 따로 있을까요. 햇살은 빛나고, 바람은 향그럽고, 그래서 제가 살아가고 있는 삶은 아주 고맙고 행복했다 정도로 하지요.

◇최근 나온 시집 <눈먼 사랑>이 ‘나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기 성찰과 여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보는데요?
-이 시집은 열두 번째 시집입니다. 1999년 제9시집 󰡔비 잠시 그친 뒤󰡕이후 저의 시세계가 삶에 대한 성찰과 존재의식, 그리고 깊은 서정성으로 변했는데요, 이 시집에 와서 삶에 대한 긍정 정신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 같습니다.

◇시인이자 교수로서 가장 아끼는 교훈적인 좌우명이 있다면?
-제 좌우명은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입니다. 이 말은 곧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같은 의미이지요. 저는 삶이나 교육이나 또 시를 쓰는데 있어서 이 좌우명을 늘 되새기곤 합니다.

◇영국 IBC 인명사전에〈세계의 시인>과 <세계 100대 교육가〉로 선정 되어 경사가 겹쳤는데 그 때가 언제였나요?
-오래 전이라 지금은 기억도 없네요. <세계의 시인>은 등재가 되어 책으로 나왔지만, <세계 100대 교육가>는 선정 소식을 듣고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선정해주신 것은 고마운데 등재는 하시지 말라”는 뜻으로 그 후 아예 연락을 안 했었지요.

◇허형만 시인은 언제부터 시상을 느끼며 시를 쓰기 시작을 했는가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출장가고 안 계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썼더니 덜컥 최우수상을 받은 거예요. 그 후 책을 많이 읽으면서 조금씩 쓰는 흉내를 내다가 순천고등학교에서 서은 문병란 선생님을 만나 문예부 활동과 <씨크라멘>동인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문과에 가서 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앙대학교 국문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대학에서도 입학하자마자 <정오>라는 동인을 결성해서 시에 심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시집 <청명> 이후 지금까지 몇 권의 시집을 내셨나요?
-신작 시집은 총 12권이구요, 시선집 2권 그리고 중국어 번역시집 1권이 있습니다. 먼저 신작 시집으로는 1978년『청명』이후『풀잎이 하나님에게』,『모기장을 걷는다』,『입 맞추기』,『이 어둠 속에 쭈그려 앉아』,『供草』,『진달래 산천』,『풀무치는 무기가 없다』,『비 잠시 그친 뒤』,『영혼의 눈』,『첫차』,『눈 먼 사랑』까지 12권입니다. 시선집은『새벽』,『따뜻한 그리움』등 2권입니다. 그리고 중국어 번역시집『許炯万詩賞析』이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꿈을 키워온 순천고등학교 모교 교정에 문단 후배들과 동문들이 세워준 허 시인의『동전한 닢』시비를 보면 어떤 남다른 감회가 있을 텐데요?
-기분이요? 이 작품이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어 후배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판단으로 아마 시비를 세워준 것 같습니다. 모교에 들를 때마다 저의 시비를 보노라면 물론 기분이야 좋지요. 모교 동산에 시비가 세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누가했겠어요. 기라성 같은 유명 인사들이 많은 모교가 아닙니까.

◇은사이신 서은 문병란 시인을 ‘민중시인’, 제자인 허 시인은 ‘남도적 가락의 서정시인’ 이라고들 평가하고 있던데, 본인은 어떤 시인이라고 생각 하세요?
-글쎄요. 제가 스승님을 위해 『문병란 시연구』를 집필하고 정리하면서 밝힌 바 있지만, 스승이신 문병란 시인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입니다. 다만 시대가 ‘민중시인’이라고 불렀을 뿐이라고 봅니다. 제 자신은 스승님의 그림자에도 차마 가까이 할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아직도 시적 경험 속에서 헤매고 있으면서 처절하게 다듬으며 쓰고 있을 따름입니다.

◇허 시인은 이별의 항구도시 목포에서 기쁨의 도시 목포로 변화된 전환기적 삶을 살았는데, 이제 붉은 노을빛을 물들이며 정년을 마무리 하리라 믿어요. 화순 고을을 위해 아껴둔 한 말씀을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 은사이신 서은 문병란 시인의 고향이 화순이고, 제 고등학교 짝꿍 리경재 시인이 살고 있는 곳이 화순이기에 화순에 대해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화순에서도 좋은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어 문향(文鄕)으로서의 문향(文香)이 황홀하게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사랑으로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