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선생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에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메냐/ 나는 옌가 하노라”고 남명 선생이 시조를 부른 풍광의 장소를 바랑하나 달랑 막가지 하나 짚어 나선다.

조선의 성리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살아 있다면 요즘의 우리 세태를 보고 무슨 말로 한탄을 할까. 신문, TV 뉴스매체가 온통 사건 사고로 꽉 차 있어 현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가장 믿어야 할 법관들의 권위와 정의, 지조 같은 위상을 어데서 찾아본단 말인가.

성리학이란 우주와 인간의 질서를 理氣論을 통하여 하나의 통일적 原理를 파악하는 형이상학적 儒學이다. 이는 극단적인 觀念論이나 神秘主義的 思考를 배격하고 중도적이고 合理的인 思考方式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선비는 나라의 원기라 했다. 선비가 뜻을 얻었을 때 나라는 흥하고, 폭력에 움츠려 들었을 때 나라가 쇠망의 길로 전락한 歷史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으면서 똑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때 모든 것을 툭 툭 떨어버리고 남명선생의 유적지를 찾아 걸어 보는 旅行은 의미가 있을 법 하다.

남명은 퇴계와 같은 해(1501년)에 태어난 영남 땅의 위대한 선비였다. 퇴계는 조정에 나가 이론유학을 전개한데 반해 남명은 처사(處士)로 자처 하면서 속세를 피해 산간에 머물면서 敬과 義의 학문으로써 오직 知行一致의 行動儒學을 주장한 性理學者요 위대한 生活 哲學者였다.

남명이 나라의 여러 난맥을 보고는 죽음과 맞서 탄핵하고 나선 단성소는 유명하다. 또한 남명이 가시덤불을 헤치고 지리산 동남기슭인 덕산에서 강의를 시작하니 수많은 선비들이 모여 들었다. 세인들은 이를 가리켜 江右學風이라 불렀다고 한다.

덕천강을 끼고 들어가면 물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지리산 동쪽 자락에서 발원한 덕천강가의 산청군 원리에는 당시 남명선생이 강학하던「산천제」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가까운 이웃에 남명의 묘와 신도비, 덕천서원, 세심정 등이 2km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옛 선비들이 공부하는 곳이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잠시 그 당시를 생각 해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채롭게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긴 겨울 방학을 학원에서 집에서 보내느라 싫증이 쌓인 청소년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기도 하다.

조식(曺植)의 위패를 모신 덕천서원(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 1576년(선조 9년)에 창건되었다.

◈조식의 생애와 사상이란
조식(1501-1572)의 자는 건중 호는 남명 시호는 문정 본관은 창녕이다. 남명은 1501년(연산군 7년) 6월26일 정랑 조언형의 아들로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서 태어났는데 변변한 선생도 없이 홀로 학문을 닦아 마침내 안동의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파의 봉우리가 되었다.

남명은 기묘사화 때 숙부 조언경이 조광조와 함께 연류되고 가까운 친구들이 피살되자 여러 가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학문하는 정신과 사회현상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느끼고 이를 개탄했다. 그리하여 그는 제자들을 가르침에 있어『소학』을 기본으로 하고『대학』을 읽어 지행에 힘쓰는 교육을 하였다.

중종 때 이언적의 천거가 있었으나 불응하고 명종 때 단성현감에 피명되었으나 역시 사퇴하였다. 그 이후에도 퇴계가 서신으로 권하여 벼슬에 나오라 하였으나 듣지 않다가 상서원판관을 받아 명종을 근정전에서 뵙고 치란의 도리와 학문의 방법을 표로 올리고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남명은 퇴계와 동갑으로 같은 경상도에서 보내면서 서로 사모하고 존경했으나, 평생 한 번도 만나 본 일은 없다. 비록 일찍이 서로 왕래 하지는 아니 하였으나, 서로 그 절조를 허용하고 그 높은 점을 취한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 같이 남명과 퇴계는 서로 간에 사모하고 존경했으나 학문적인 면에서는 크게 달랐다.

퇴계가 仁, 곧 어짐을 받드는 학문을 하였다면, 남명은 義, 곧 의로움을 받드는 學問을 했다. 남명의 학문은 안으로 경건을 추구하되 밖으로는 정의를 실행하는 실천적 학문이었다. 남명이 산천재에서 길러낸 제자가 백 명쯤 되었는데, 그 중에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으로 목숨을 바친 이가 절반이 넘었다. 이 사실은 그의 학문이 의로움을 받드는 것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유학의 공리공론의 벽을 뛰어넘는 실천적인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조식의 제자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의병장은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1522-1617)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관권의 부정에 맞서 일어난 진주민란도 남명의 정신이 이어 내려온 곳인 산천군 시천 장터에서 일어나 진주로 퍼져간 것이며 東學農民革命 때도 이곳의 주민들이 많이 참여 했다.

남명은 일생 동안 처사라는 명실을 기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는 임종에서도 외손자이자 문인인 김우웅에게 사후의 칭호를 처사라고 부를 것을 당부했다.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말하는〈처사〉의 말은 이러하다. “대저 어린아이(儒者)는 이름이 없어 嬰이라 부르며, 여자는 字가 없어서 處子라 하는데 영처자란 대개 숨은 선비(隱士)들이 이름을 갖고자 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이다.”고 했다.

덕천서원 앞에 위치한 세심정

이와 같이 남명의 고고한 선비정신은 處士象을 확립했으며 士尊官卑의 가치관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론면의 퇴계학, 정교면의 율곡학, 경세면의 다산학에다가 정신면의 남명학이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조선시대 유학은 네 기둥이 모두 갖추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일찍이 우암 송시열이 나약한 선비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탐닉한 관리에게 염치를 느끼게 하는 교훈은 조식의 고풍으로부터 나왔다고 한 것이라든가, 이익이 대체로 嶺南右道 사람들이 樂善好義하는 것은 조식의 유풍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 말은, 결국 한 선비의 인격적인 감화가 결코 帝王의 교화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라 하겠다.

실로 남명은 조선시대 선비상과 선비정신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리하여 남명 밑에서는 경상남도 출신의 학자가 대대로 유업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때에 문인이던 정희량(1469-?)이 무오사화에 얽혀 유배되었고, 또 남명의 학통을 계승했던 정인홍(1535-1623)이 계축옥사를 일으켰다가 인조반정으로 참형되었다. 정인홍이 죽자 그의 고향인 합천군은 역적이 난 땅, 곧 반역향이라고 하여 군에서 현으로 강등되었다.

그 뿐 아니라 그 고장 선비들로 하여금 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관계진출의 길을 막아 버렸다. 남명 사후 특히 정인홍이 인조반정으로 처형됨으로써 남명의 학문과 사상도 큰 화를 입어 타격을 받았다.

이익은 말하기를 “퇴계는 소백산 밑에 나고, 남명은 두류산 동쪽에 낳으니 모두 嶺南땅이다. 상도는 인을 위주로 하고, 하도는 의를 위주로 하여 마치 바다가 넓고 산이 높은 것과 같다.”고 했다.

실로 남명 조식은 한국의 정신사에 보기 드문 선비요, 퇴계와 더불어 가장 이름 높은 학자였다. 또한 그 문하에서 김효원, 오건, 김우웅, 정구 등 저명한 학자들이 배출되었을 만큼 뛰어난 교육자이기도 했다.

남명 선생이 1572년(선조 4년) 2월 8일 7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宣祖는 대사간을 추증했고 광해군은 영의정과 함께 시호를 내렸으며 남명서원에 모셨다. 저서로 왕룡가, 권선지로가, 『남명집』등이 있다.

욕천(浴川)이라는 시비(詩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