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달용 작가.

이른 아침, 혹은 늦은 밤. 도청 앞을 바라보면 허탈하다. 하나의 거대한 무덤을 본다.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노란 리본들과 붉은 깃발들, 혹은 ‘이곳이 헐릴 예정입니다’라고 씌어 진 거대한 검은 천들.

티베트의 고원처럼 사람이 살고 있는 지상에서 수 천 미터 하늘 위로 솟아올라 있는, 세상과는 동 떨어진 섬이다. 사람하나가 이승에서의 인연이 다해 독수리의 힘으로 영혼이 천상에 다다를 즈음, 그 가족들은 노랗거나 빨간 오방색 중의 하나인 헝겊을 천상에 매어진 줄에 묶는다.

영혼은 독수리의 힘으로, 혹은 쉼 없이 불어대는 건조한 바람과 함께 날고 또 날아 천상에 다다른다. 티베트인들이 생각하는 영혼이 쉴 수 있는 공간인 천상이다.

여기는 천상이 아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다. 29년 전의 영혼들이 노란 리본에 매달려 바람과 함께 그 시간의 역사를 알려준다. 아직은 이 땅 위를 떠날 수 없어. 아직은 때가 아닌걸 알아. 노란 리본을 바람이 불어대는 방향으로 날려 줘. 이제는 놓아줘.


다시 어두워진 하늘을 날아가

▲ 허달용 作「산이 된 바보 노무현」

지난봄부터 시작된 촛불문화제를 보고 또 보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면서 스스로에게 향하는 질문을 하고 또 했다.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 왜 떠나지 못하고 밤만 되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댕겨 손에 드는가.”


대학을 다닐 때는 그림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해 혼란의 시간을 견뎠다. 집안 모두가 그림을 하고 있고, 나 역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압박보다는 스스로 그림이 아니면 안 되는 삶을 찾고 싶어 한 방황이었다.


‘그림 아니면 안 된다’는 선연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그는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 스스로 차오를 때까지 마음을 기다렸다.


다시 붓을 찾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세상의 부조리와 함께 다시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그냥 가만히 물 흐르는 순환으로 살아가고 싶었으나 환경은 그에게 폭풍을 일으켰고, 일렁이는 파도를 그대로 온 몸으로 맞으며 풍랑의 한 가운데로 들어선 것이다.


폭풍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의 중심이 되고 나서 그가 맞은 것이 한, 미 FTA였고,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여린 여학생들의 하얀 손과 눈망울이었다.


“촛불문화제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부끄러웠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혹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지 않음을 진심으로 반성했다.”


촛불은 촛불로 이어져

▲ 허달용 作「마음에서 손끝이 오더라」

이번 전시회의 화두는 ‘촛불’이다. 사람의 마음을 한 움큼씩 모아 만든 사랑과 소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역사의 소중함이나, 역사 속으로 묻어져 갈 정신일 수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모아지는 어린 여학생들의 마음이 촛불로 피어났다.

촛불이 하나씩, 둘씩 모아지고 늘어갈 때마다 그는 빛을 져 간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모으고 모아 소망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작은 액자 안 종이컵, 촛불에는 사람의 마음, 소망, 염원, 기도가 그만큼의 기원으로 담겨져 있다.

그는 그림 속에서 말한다. 그림은 작가 개인의 국한 된 표현이기 이전에 사회의 총체적인 현상의 발현이다. 작가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그림 안, 혹은 작업 안에 내재되어 표현되지 않는다면 작가는 이미 이 세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시대를 말해야 한다.

<마음에서 손끝이 오더라>에서는 용산 참사로 떠나버린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와, 2007년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했던 고 허세욱, 지난해 이명박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고 이병렬 씨. 그리고 바로 얼마 전 대한통운 택배기사 집단해고에 반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종태 화물연대광주전남지회장의 얼굴까지가 환하게 주홍빛으로 되살아 나 바람에 흔들리며 천상으로 날아간다.

연등이다. 부처님 다시 이 세상으로 태어나 돌아오신 날, 거리 곳곳을 물들이는 연등이다. 하지만 그냥 연등이 아니다. 더 큰 생명으로, 더 환한 웃음으로 천상을 향해가는 우리 모두의 소망의 연등, 마음으로 밤을 밝히는 연등이다.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이 연등으로 하늘로 오르는 길을 만들어준다.


오월, 광주는 눈밭이 되다 - 여전히 겨울이다

▲ 허달용 作「풍죽」

<오월에 내리는 눈>.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리거나 쌓여있는 눈은 없다. 하지만 제목이 <오월에 내리는 눈>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오월, 광주의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다.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아득하다. 곳곳에서 주변은 먹빛으로 채워지고 아니면 빛바래가는 붉은 색이다. 헤집어진 땅 더미가 피울음으로 통곡하는 눈 내리는 오월 광주다. 눈물이 펑! 쏟아질 만큼의 허탈함을 갖게 한다.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검게 드리워진 건물을 덮어 둔 장막 안으로 혹, 여린 희망의 푸른 잎이 있다면 모를까 그 어디에도 희망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살아있는 생물하나 보이지 않는 오월, 작가의 그림 안에서의 광주는 예전 시인 양성우가 노래했던 겨울 공화국이다.

<산이 된 바보 노무현>은 더 절망이다. 수 십 미터 깎아지른 절벽 위 그 절벽만큼의 무게로 바보 노무현이 있다. 숙여버린 머리, 길게 솟아나온 모자 챙 아래 눈물과 고통 가득한 회한어린 눈빛의 바보가 보인다. 등 뒤로 한 무리의 새가 날아간다. 새와 바보는 같은 곳을 향해 가지만 새는 더 이상 멀리 날을 수도 없다. 그림 안 새들은 이미 그림 안에 갇혔다.

산이 되어버린 바보는 저 산의 무게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림 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듯 서성거린다. 우리는 이미 바보였다.


이제는 일어서서 마음을 다잡고 나아가야 할 때

작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조용하지만 단호하고 강렬하다. <붉은 달>과 <풍죽>이다. 주변의 모든 대나무들이 대나무를 자처하면서도 바람에 흔들려 휩쓸리지만 작가는 불어대는 바람에도 굳건히 허리를 곧추 세운다. 이파리를 털지도 않는다. 꿋꿋하게 자신의 다리를 더 견고히 할 뿐이다.

▲ 허달용 作「연서(戀書) 시리즈」

“이제는 다시 민중미술이다. 80년대 싸워서 정권을 바꿨고 우리는 이것을 지켜내지 못했다. 드러내놓고 하지 못했던 마음 속 분노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이제는 다시 되찾을 때다.”

“중심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촛불문화제를 보면서 배우고 길렀다. 단지 그림 안의 노동자가 아닌, 일상을 같이하는 노동자의 생활과 삶으로 들어가 은유로 작업을 하고 싶다. 대통령을 죽일 수밖에 없는 시간들, 촛불문화제가 열리던 100일 이상의 시간 속에 모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는 읽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그는 다시 거리에서 서성거리던 풍경 속에서 돌아와 그림을 그린다. 그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가치다.

일시 : 6월17일(수) 까지
장소 : 예술의 거리 원화랑
문의 : 010-9943-0118

▲ 허달용 作「오월에 내리는 눈」

에필로그

바닥이 빛나는 것들을 업고 / 자작나무 숲으로 업히러 간다 / 나이테는 나이테를 / 가지는 가지를 업고 / 마디 굵은 솔가지는 / 부엉이를 업고 / 곤충마저 휘어져라 업고 있다 // 그렇게 서로의 이름표를 / 업어주지 않았다면 / 서로의 체온과 슬픔을 /업어주지 않는다면 / 바닥의 빛나는 것들을 / 업어주지 않는다면 / 어머니가 어부바 우리를 / 업어주지 않았다면 / 지금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으리 / 따뜻한 등을 껴안지도 못하였으리 // 그렇게 서로의 이름표를 // 업어주지 않았다면 // 서로의 체온과 슬픔을 // 업어주지 않는다면 / 바닥의 빛나는 것들을 / 업어주지 않는다면 / 어머니가 어부바 우리를 / 업어주지 않았다면 / 지금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으리 /따뜻한 등을 껴안지도 못하였으리 // 나 몸무게를 줄이고 / 숲으로 들어간다 / 내 아이를 업고 잠재우는 / 여자에게로 / 여자가 업은 세월이 / 아이 하나뿐이랴 / 바람 한 점 뿐이랴 - 바닥이 빛나는 것들을 업고. Song by 인디언수니. 詩 임의진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씩 곁을 떠난다. 따라갈 수도 없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이다. 서로가 있는 곳이 너무나 확연해 손을 뻗을 수도 없고 체온을 부비며 확인할 수는 더더욱 없다.

자작나무 숲으로 업히러 간다. 몸무게를 줄이고 마른 장작이 되어 빛나는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흙 속으로 간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사랑을 확인하고 체온을 나누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어머니의 어부바를 그리며 다시 어머니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바보 노무현도 그랬다. 말없이,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 바닥이 빛나는 것들을 업어준다.

아직 모르는 게 많다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이 뛰어왔는데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바라보니 저만치 있는 것이 골인테이프가 아니라, 막다른 벽이라면.


범현이baram@siminso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