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남개 구원홍(70) 선생

사진은 원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결정적인 장면을 담아낸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반면 별로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생각 외로 운이 따라주는 경우도 많다. 이에 비하면 사진은 정직한 편이다. 그러나 사진촬영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며 많은 노동과 체력, 인내를 요구한다. 사진 경력 35년의 화순의 대표사진작가 남개 구원홍 선생은 많이 돌아다녀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화순예술인협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오늘도 고희라는 세월의 무게를 잊은 채 카메라에 세상을 담기 위해 집을 나선다.

나는 화순 토박이다
남개 구원홍 선생은 화순 광덕리 태생으로 화순에서 나고 자랐다. 한곳에 터를 잡고 현재까지 6대째 고향을 지키고 있는 그는 70년대 초 이동단위농협을 통합해서 만든 화순농협의 창립멤버라는 이력도 갖고 있다.

“나는 농협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99년에 정년퇴임을 했네. 6개의 단위농협을 합병해 하나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화순농협의 모태가 되었지.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농협에서 맡은 내 일 때문이니 직장과의 인연이 예사롭다고 볼 수는 없지.”

구원홍 선생은 74년 농협에 입사해 농촌지도사업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업무에 관련된 일을 근거로 남길 길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사진이라는 매력적인 도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사진과의 인연은 그에게 세상을 보는 시선과 마음에 변화를 주어 자신을 낮게 더욱 더 낮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진은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거울과도 같네. 왜냐하면 내 마음이 어두웠을 때는 사진도 어두워지는데 반해 마음이 편안해지면 사진도 따라 밝아지거든. 또 나를 낮추고 사진을 찍으면 세상도 자신을 낮추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네. 언뜻 이해가 안 갈지 모르지만 사진도 반사를 찍는 것이거든. 그래서 내가 더 마음을 열고 맑아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좋은 사진을 찍을려면 좋은 신발을 신어라
구원홍 선생은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사진은 현실적이며 가식이 없다고 강조한다. 한국화나 서양화는 4계절을 방안에서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사진은 실제 현장에 가서 촬영하고자 하는 대상과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지리산에 사진촬영을 하러 갔었는데 비 때문에 카메라도 못 꺼내보고 돌아온 적이 있었네. 비온 뒤의 풍광이라도 담아보고자 하는 욕심에 탠트에서 1주일을 기다렸지만 하늘이 돕질 않더구먼. 그만큼 좋은 사진 한 장 찍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야.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와 아침저녁 가리지 않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가능하지. 그래서 사진 초보자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네. 인내와 더불어 튼튼한 신발을 꼭 장만하라고… (웃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촬영에 소요되는 1~2초라는 시간은 영원처럼 긴 시간이다. 우리가 보는 인상적인 사진들은 그 짧은 시간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잡아낸 것이다. 구원홍 선생은 사진을 찍을 때는 직감적으로 셔터를 눌러야 한다고 말한다. '이걸 나중에 제목을 무엇이라고 붙여야지' 하고 머리로 생각하며 찍는 것이 아닌 순간의 느낌을 잘 담아서 사진을 찍고 나중에 그 사진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받아 적는다는 것이다.

이서적벽. 80년대 후반 물이 차오른 적벽을 구원홍 선생이 최초로 촬영했다.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 중에 하나가 ‘이서적벽’사진이네. 80년대 후반부터 물막이공사로 적벽에 물이 차기 시작했는데 그 풍경이 천하일품이었지. 나를 갈대밭에 내려다주고 떠나는 배와 적벽이 동시에 카메라 앵글에 잡혔을 때 바로 이거다 싶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 댔었네. 전시회 때 그 사진을 내놨었는데 물이 차있는 적벽을 최초로 촬영했다 해서 방송사로부터 한창 주목을 받기도 했었지.

후진양성으로 선배의 도리를 다하고 싶다
구원홍 선생은 ‘현재 화순에서 사진작가로 등록된 사람이 13명이다’며 그들이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선배의 도리라고 말한다. 또한 화순에서는 2선으로 물러났지만 그래도 앞장설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러나 한편으론 진실을 담는 예술이자 기록매체이기도 한 사진이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데 성공한 사진의 힘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한다는 것이 선생의 지론이었다.

에필로그
직장과 사진작업의 병행,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를 힘들게 했지만 한번 시작한 것은 승부를 보고야 말겠다는 선생의 의지마저 꺾을 수는 없었다. 80년 전국어린이 사진공모전 장려상과 각종 공모전 25회 입선, 93년 전라남도 미술대전에서 작품명 실의 대화로 대상을 받는 등 남다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진에 대한 열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화순최초로 열린 불우이웃돕기 회원전을 통해 마련한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했을 때는 자부심 보다는 보람이 먼저 밀려왔다.

구원홍 선생이 아끼는 독일산 ‘린호프-611’. 95년 구입 당시 1,200만원을 호가 했다.

“사진은 현대의 붓이네. 문제는 그 붓으로 무엇을 그릴 것이냐지. 그 몫은 작가의 것이고 작품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이 한다네.”

사진은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알기 위한 도구로 쓰일 때 본래의 가치가 돋보인다. 구원홍 선생의 작품들은 진실을 향해 열려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또한 선생은 한번도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순간을 포착해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일 뿐 그것을 예술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에 대한 열정과 35년의 사진 경륜은 오히려 그를 장인에 더 가깝게 만든다. 장인 구원홍 선생. 그는 지금도 사진에 대한 사랑과 후진양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사진작가 남개(南芥) 구원홍(具元弘)
▲전남 화순출생
▲전남미술대전 초대작가
▲호남미술대전 초대작가
▲전남사진대전 초대작가
▲각종 사진공모전 입선 25회
▲각종 사진공모전 특선 및 금상 4회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장려상
▲전라남도 미술대전 대상
▲현 한국사진작가협회 본부이사
▲현 화순예술인협회 회장

1993년 전라남도 미술대전 대상作 ‘실의 대화’. 화순 동복에서 촬영했다.

작품명 ‘환희’. 88서울올림픽 당시 불꽃축제를 담았다. 구원홍 선생은 야경과 풍경사진을 즐겨 촬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