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이규형(72) 선생

부모님이 생존해 있고 형제가 무탈한 것이 첫 번째 낙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으니 이것이 두 번째 낙이라. 천하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낙이니 삼락이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고장 출신 서예가 송파 이규형 선생이 운영하고 있는 삼락서예원에 담긴 뜻은 바쁜 현실에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금껏 한눈팔지 않고 한길만을 걸어온 선생의 40년 외길 서예인생은 제자들과 함께하는 삼락서예원에서 노익장의 힘으로 살아나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태 자리는 화순이요 서예의 꽃은 광주에서 피웠다
송파 이규형 선생은 이서면 안심마을 출신이다. 비교적 부유한 집의 6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선생은 한학과 서예에 관심이 많은 부모의 배려로 자연스럽게 붓과 먹을 접하게 됐다. 선생의 집에 있던 역락제라는 서당에서 입헌 정태중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으며 정식으로 서예계에 입문한 그는 붓 한 자루에 인생만사 희로애락을 담아 40년 서예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아버님이 공부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셨지. 유명한 분을 모셔다 놓고 집에서 사사 까지 받았으니 말이야. 당시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라 지금의 동복수원지 월산마을로 피난을 갔었는데 그곳에서도 서예공부를 했었네. 나라가 어려울수록 정신이 바로서야 한다는 어른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지.”

그 후 선생은 더 넓은 곳에서 서예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69년 고향을 떠나 당시 광주서예학원 원장이었던 송곡 안규동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게 된다. 시간을 잊은 채 수천 수만의 글씨를 써내려가며 붓을 놓지 않았던 선생은 전남도전과 국전에서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며 1984년 전남도전, 광주시전 초대작가와 1993년 국전 초대작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삼락서예원, 그리고 필우회…
송파 이규형 선생은 1976년 금남로 5가에 삼락서예원(三樂書藝院)을 개원한데 이어 이듬해 제자들로 구성된 필우회(筆友會)를 발족시켰다. 삼락서예원은 進德修業法古知新(진덕수업법고지신 - 덕 있는데 나아가 업을 닦고 옛 선현의 가르침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을 강목 삼아 지금까지 서예 인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필우회는 첫 번째 전시를 1979년 개최한 이후 매년 회원들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작년까지 31번째 회원전을 개최했다. 필우회 회원 중 전남도전, 광주시전, 국전 등에서 심사를 맡고 있는 초대작가가 30명에 이를 만큼 그 역량도 과시하고 있다.

작품명 ‘弘益人間理化世界(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세계를 다스려 교화 시킨다’

“삼락서예원과 필우회는 또 다른 나인 셈이지. 내 안에 있는 서예라는 예술이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일종의 매개체이니까. 요즘 사람들에게 한가지 바라는 점은 창작에 몰두한 나머지 지나치게 개성을 드러내는 일을 삼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야. 서예라는 것이 옛것을 먼저 배워 차고 넘칠 정도가 되면 자연적으로 개성이 나오는 법이거든. 그때까지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는 말이지.”

이규형 선생은 서예를 함에 있어 섣부른 욕심을 앞세우지 말라고 경고한다. 또한 서예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심획이라고 강조한다. 글씨를 쓰기 전 마음공부가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당나라 때 유공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글씨는 천하일품이라는 평을 받았었네. 하루는 임금이 그를 불러 ‘어찌하면 그리도 글을 잘 쓰느냐’고 묻자 유공권이 답하기를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잘써집니다’라고 했다네. 이 말을 듣고 임금이 ‘글씨도 저러한데 정치는 오죽 하겠는가’라며 큰 깨우침을 얻었다고 하네.

사회로의 환원… 그것이 내 바람이다
선생은 70세가 넘으면서부터 그동안 자신이 공부했던 서예를 모르는 이들에게 널리 전하는 것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와서 글씨를 부탁해도 마다하지 않고 그를 부르는 곳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모든 일 제쳐놓고 찾아 나선다.

“이제는 서서히 마무리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됐지. 바람이 있다면 내가 알고 있는 서예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전파하는 일이야. 서예라는 것이 단순히 글만 쓰는 것은 아니네. 그 안에 모든 인생 공부가 들어있는 셈이지. 그런데 요즘에는 컴퓨터니 뭐니 해서 점점 잊혀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네.”

현재 강진문화원, 보성향교, 화순 소재 박약회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선생은 지금도 일흔이 넘은 나이를 잊은 채 서예 전파를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편 선생은 고희를 맞아 생애 첫 개인전을 열만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위의 권유와 40년 서예 인생을 뒤돌아 보기위해 2006년에 열린 그의 개인전에는 부친의 뒤를 이어오고 있는 세 딸의 서예작품도 함께 선보여 가족작가로써 서예계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에필로그
전남도전, 광주시전 심사위원,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심사 및 운영위원 역임과 광주교대, 조선대 초빙교수 등을 지내고 현재는 광주 삼락서예학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송파 이규형 선생. 그는 중국, 일본, 대만 등 국제교류전 및 국내외 초대전을 통하여 한국서예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데도 앞장서 왔다.

전서, 행서, 해서, 초서, 예서 등 오체를 다양하게 구사하고 정자, 반흘림, 온흘림 등의 한글 에도 능통한 그는 서예가이자 한학자로서 이 시대에 한 획을 그어 놓았다. 또한 앞서 살았던 인생의 선배로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내가 뭐 특별한 사람이라고 할말이 있겠는가. 그래도 요즘 사람들한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네. 유오지족(唯吾知足-만족할줄 알아야 한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살기 좋아졌는데도 사람들은 더 더 더를 외치며 잘살고 싶어하지. 욕심은 끝이 없어서 결국 불행한 결과를 낳고 만다고 생각하네. 정당한 욕심이야 부려야 겠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은 오히려 해가 된다는걸 알아줬으면 하네.”

작품명 ‘唯吾知足(만족함을 안다)’. 4가지의 문자가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송파 이규형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광주 대인동에 위치한 삼락서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