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철(46) 작가

나무를 깎고 다듬어 미세한 개미 다리와 더듬이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내는 개미조각가 김관철씨. 그의 손에서 나온 개미들은 바이올린을 켜고 드럼을 두드리고 나뭇잎을 기어오른다. 천 마리의 개미 중 같은 표정은 단 한 마리도 없을 정도로 각양각색인 개미들의 얼굴에선 지독하리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작가정신이 스며 나온다.

경제학도에서 목공예가로…
완도가 고향인 김관철 작가는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 경제학과 84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입학과 동시에 군 입대를 하게 됐고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전경이었던 그는 전남도청 문 앞에서 경비서는 일을 하게 됐고 이는 어렸을 적부터 나무를 깎아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던 그에게 작품구상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을 제공해 주었다.

“어린 시절을 섬에서 보냈는데 당시엔 갖고 놀만한 장난감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무를 깎아 이런저런 장난감들을 직접 만들어 놀곤 했었죠. 그때 느꼈던 매력을 잊을 수가 없었는데 군대에서의 시간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겪이 되었죠.”

그는 88년 제대와 동시에 ‘새아방’이라는 목공예 동아리를 만들어 작품구상에만 그쳤던 목공예 작업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졸업 후에도 동아리방에서 작품 활동에만 전념해 작업 기간 14개월의 대작 ‘만추’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자유롭지는 못했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건축, 조경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고 육체적 고통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못한데서 오는 안타까움이 그를 더욱 괴롭혔다.

그러다 대나무로 작품을 만드는 조선대 미대 교수의 눈에 띄게 되어 기술을 전수 받고 2002년에는 대학 강단에 서게 되는 기쁨도 맛봤다. 그러나 이도 잠시. 관련 학위가 없으면 강단에 설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1년 동안의 강사 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 후 대나무로 만든 16각상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경험부족으로 실패를 맛봐야만 했다.

“16각 대나무상을 만들었는데 사람들로부터 반응이 좋았어요. 관심을 보일 뿐 아니라 직접 주문하기도 했으니까요. 만약 대량생산해낸다면 돈 좀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대나무 건조과정이 만만치 않아서 건조기까지 들여놔야 될 상황이 오자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인연이 있던 미대 교수들의 일을 도와주며 생활하다 광주 학동에 목공예 공방을 차리고 외부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작하며 작품 활동과 경제활동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본 잡지사진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15년 전 잡지에 실린 어느 일본작가의 개미 작품은 그에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듯한 충격을 주었다. 사진 속에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개미들이 살아 있는 양 나뭇잎을 타고 오르고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었다.

‘2007 숲 가꾸기 산물전 제1회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천년의 숲 공연’. 개미들의 연주회 풍경을 담았다. 제작기간 4개월.

“나무를 깎아 실물크기의 개미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경이롭기까지 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오기 같은 것도 생겼죠. 더 잘하고 싶다는. 그래서 몸통은 나무지만 더듬이와 다리는 철사로 처리한 일본 작가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어요.”

그의 오기와 열정은 결국 개미 몸통 뿐 아니라 머리카락 세 가닥 두께의 더듬이와 다리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1.5cm의 예술이 탄생한 것이다. 그 후 개미 뿐 아니라 무당벌레, 진딧물 베짱이 등 다른 곤충들까지 조각을 해내며 그의 공방을 개미세상에서 곤충세상으로 만들어 갔다.

고비는 있었다. 그러나…
“내 작품은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작품들이에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돈이 없어 하루에 두 끼만 겨우 먹으며 생활했으니까요.”

주위에서도 돈 되는 것 좀 하라며 나무랐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 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마디로 돈이 이기냐 그가 이기냐의 싸움이었다. 이러한 힘든 조건 속에 쌓아온 목공예 경력 30년, 개미를 비롯한 곤충조각 15년의 경력은 그의 작품과 그를 빛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를 향해 쏟아지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으로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옛말에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는데 딱 맞는 말인 것 같아요. 힘들다고 중도포기 했다면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놀라는 모습도 볼 수 없었을 테죠. 내 손을 거친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때는 정말 기분 좋고 행복해요.”

현재 목공예분야에서도 개미와 같은 극세정밀조각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그는 작품을 더욱 더 모아 서울과 세계 각국을 돌며 전시회를 갖고 싶다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자연의 소중함과 옛 향수를 전해주고 싶다
김 작가는 숲 가꾸기 산물전에 화순대표로 출전해 2007년 1회대회에서는 개미들의 연주회 풍경을 담은 천년의 숲 공연으로, 2008년에는 목공예품 숲의 향으로 2회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 작가는 2명의 아들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일을 대물림하고 싶다고 말한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에게 힘든 일은 안 시킬려고 해요. 그러나 나는 내 아들들이 아버지가 해왔던 일을 이어 받아 더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잘 따라 줄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작품명 ‘공생’. 진딧물과 공생관계인 개미가 무당벌레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하고 있다.

그의 이런 바람들은 개미를 비롯한 곤충을 조각하는 일들이 어린이에게는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고 어른들에게는 옛 향수를 불러 일으켜 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에 대한 주문자는 많지만 아직 판매는 하지 않고 있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개미마을”의 볼거리를 먼저 채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김관철 작가는 현재 작년 7월 개관한 화순 동복면의 자연테마 체험학습관인 개미마을(대표 조영우)에 둥지를 틀고 대표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개미조각에 있어 국내 1인자로 평가받고 있던 그의 실력과 자연테마체험관을 꿈꾸던 조 대표의 포부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돈 걱정 없이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고 싶은 그에게 조 대표의 후원은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15년째 화순읍에 살고 있는 작가의 출근시간은 오전 9시, 퇴근시간은 대중없다. 작업에 집중하다보면 한밤중이 되기 일쑤여서 작업실 옆에 마련된 숙소에서 잠을 청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은 개미마을 이곳저곳을 채워가며 찾아온 관람객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는 메신져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개미 조각의 초기 단계인 기본 윤곽 잡기. 작가의 섬세한 손길을 거치면 표정까지 살아 있는 개미가 탄생한다.

‘천년의 숲 공연’ 중의 일부인 연주하는 개미들

수천개의 솔잎을 깎아 완성한 ‘무릉도원’. 목공예 경력 30년의 내공이 묻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