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선생

2008화순풍류문화큰잔치가 16일부터19일까지 공설운동장 일원에서 치러지게 된다. 바야흐로 전국은 축제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광주의 충장로 축제, 음식축제, 온천축제, 옹기축제, 명량축제 등 온갖 이름의 축제들이 전국을 축제의 바다로 물들이고 있다. 우리 화순군도 풍류문화라는 컨셉으로 새로운 형태의 대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화순군민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는 이경재 선생이 '풍류와 멋'이라는 주제로 풍류와 멋의 한국적 역사와 의미 등에 대해서 참으로 좋은 글을 보내주었다. 원문에 충실하려는 원칙을 지키고자 하였고 지면사정상 부득이하게 편집된 부분이 있음을 밝히면서 이 점 이경재 선생에게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 여름 불볕더위로 들판에 벼들이 익어 고개 숙이고, 푸르던 나무 잎이 어느 덧 물들어 결실로 가는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이 우리들 곁에 왔다.

올림픽으로 달구었던 젊은 건아들의 금메달 소식에 더운 밤을 이열치열의 열정으로 식혔고, 한편 독도 문제로 가득이나 한여름을 열 불나게 냄비근성으로 온 국민이 들끓어야 했다. 시간은 지나가 남김의 그림자를 지우며 오듯이 열정의 뜨거움에 진흙 속에 연꽃은 자비로이 맑고 향기롭게 피어냈다.

소슬한 가을의 문턱에서 하늘에 나는 고추잠자리가 무리지어 날고 다무락 울 너머 감나무에 익어가는 감이 주렁주렁 저녁이면 귀뚜라미 소리가 무언가 슬픈 연주로 달빛에 처량함으로 감상에 젖어 독서로 밤을 지새워 노래나 시 악기를 꺼내어 연주 하고픈 계절이다......

시월은 상달로 알곡의 달 지역마다 문화 행사와 축제로 한해의 노력과 정성 결실을 땀으로 일궈낸 날을 한마당 행사가 참으로 많은 달이다.국군의 날, 개천절, 전국체전, 잇달아 우리 지역의 풍류와 문화행사가 있는 달이다. 프랑카드가 거리 곳곳에 나부끼어 군민들의 마음을 한 컷 부풀려 에드버룬으로 둥실둥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에 띄우고 있다.

적벽축제, 고인돌 축제, 운주축제 군에서 심혈을 기울려 치러 보았지만 별로 개운치 못한 생뚱한 뒷맛을 남기고 말았다. 약간은 얼굴 내밀기 좋아하던 그런 축제가 되었다. 인사말 축사가 많은 곳에 다양성과 군민을 위한 놀이 한마당은 어디에도 없다는 뒷말이다. 이 지역사회를 잘 반영하는 브랜드의 가치와 자연, 산, 강, 물, 온천, 역사유적, 사찰, 종교, 학교, 유치․유아원, 시설 등 읍, 면, 각 마을, 특산물, 농산물, 품평대회 농악놀이, 먹걸이, 최경회 장군, 정암 조광조. 학포 양팽손. 조선 8대 문장가 송천 양응정, 김삿갓, 서예가, 광주 학생독립 운동가, 판소리 등 한말 의병장 인물들을 엮어 테마로 이어진 문화적 벨트가 약하다는 평이다.

군민의 예산과 혈세로 치러진 이벤트 행사에 이익성도 창출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수익성에 신바람도 창출되는 것이며 다음해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군민의 행사에 풍류와 멋의 이미지에 걸 맛은 명성을 떨치되 군민들의 한마음 잔치 마당의 즐거운 행사가 되기를 바라고 싶은 마음에서 풍류와 멋에 대한 글을 적어본다..

1) 풍류와 멋이란
아름다움을 찾는 욕망 심미성(審美性)에 대한 추구는 모든 인간의 본연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하대의 6두품 출신의 최치원이 금석문자를 인용한 ‘삼국사기’에 전하는 것을 보면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일러 風流라 한다. 멋은 아름다움의 특히 한국적인 표현이다. 예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인 노랫가락, 춤사위, 붓그림에서 혹은 수수한 일상적인 일과 놀이의 삶 속에서도 멋을 추구하면서 살아 왔다. 멋은 예로부터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긍적적인 가치 개념이다. 그래서 ‘멋’이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뜻으로, ‘멋’이 없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멋’이 풍류, 또는 여유로움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 된다. 동양적인 풍류, 또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음악을 한곡 들을 수 있는 여유로움 이것이 바로 ‘멋’의 기본이요, ‘멋’의 바탕이다.

걸어가는 여인의 가슴에 꽃힌 장미꽃을 보았을 때 멋을 느끼고 멋을 말한다. 화병에 꽃힌 꽃을 보고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기는 하나 멋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들판에 무리지어 핀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광경을 보았을 때는 멋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멋은 정지해 있는 것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의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아름다움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이 인간이라면 멋은 근본에서 ‘인간적인 가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천금을 주고도 중국 소저(小妲)의 정조를 범하지 않고 곱게 집으로 돌려보낸 통사 홍순언도 멋있는 사나이의 예로 들었다. 물동이로 물을 나르던 시절에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있었던 참으로 멋있는 광경의 예로 동서 또는 시누와 올케 사이로 보이는 두 젊은 여인이 무거운 물동이를 서로 자기가 이겠다고 앞을 다투는 아름다운 마음씨 속에 진정한 멋을 발견했던 것이다.


젊은 시절 풍류로 소일한 이지천은 지난날 그가 사귀던 기생을 찾아갔으나 여자는 없고 거문고만 있었다. 쓸쓸히 앉아서 기다렸으나 사람은 오지 않았으므로 결국 그는 사랑의 시 한수를 지어 벽에 써 놓고 돌아갔다. 그 뒤 10년이 지났을 때 이지천은 호남의 어느 여관에서 그 기생의 옛 친구인 또 한 기생을 맞았다. 이 여인은 10년 전 친구의 방 벽에 씌어 있던 한시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하며 그 시를 한자도 틀리지 않고 암송하였다. 암송을 마친 노기는 자기에게도 시 한편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며 곧 적삼을 벗어서 펼쳐 놓았다. 이공은 그 위에 또 한 수의 칠언절구를 지어서 적어 주었거니와 조촐하게 늙어 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우아하게 묘사하였다. 한갓 기방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이야기지만 그 경지가 높고 풍류가 가득 차 있다. 우리 조상들이 즐겼던 풍류, 그것은 바로 멋의 대명사와도 같은 것이다.

거문고로 이름난 명기 상림춘의 이야기도 우리 조상들의 풍류와 멋을 사랑했다는 증거로서 볼 수 있다. 상림춘은 거문고의 명인으로서 당대의 명인들과 교류하였으며 72세가 되었을 때도 그의 거문고의 솜씨는 여전 하였다. 그가 늙은 뒤에도 그에 대한 인기는 여전했으며 상류사회에서 끔찍한 대접을 받았다. 이름난 이상화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림으로 그렸으며 그 위에 신종호가 시로써 찬을 하였고 그리고 다시 장사룡이 발문까지 써 주었다. 한 노기의 예술을 이토록 높이 대접한 우리 조상들은 분명 풍류와 멋을 생활화한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조선 중기 전설적인 의적 임꺽정도 멋이 있는 사람이었다. 피리의 명수 단천령이 임꺽정 패에게 붙들려 그들의 소굴로 끌려갔을 때 도둑들은 단천령이 피리의 명수라는 소문을 듣고 한 번 불어보도록 하였다. 단천령이 계면조를 불렀을 때, 도둑들은 그 슬프고 처절한 가락에 감동하여 우는 자가 많았다. 두령 임꺽정은 피리 불기를 중지 시키고 ,다음날 단천령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뿐만 아니라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신표로 작은 장도 하나까지 내 주었다. 예술가를 대접할 줄 아는 임꺽정은 멋을 아는 대도였음에 틀림이 없다.

피리 가락은 일반적으로 부드럽고 한가로운 분위기를 수반한다. 그것은 심금을 울리는 호소력도 가지고 있다. 한국의 피리 가락에는 한국인의 멋이 담겨 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피리를 즐겨 불렀고 피리소리를 즐겼다는 사실은 우리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멋을 추구하며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요즈음 이웃집에서 울려오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멋을 느끼는 경우가 없으나 어린 시절 사랑방 초막에서 들었던 피리 소리를 사랑했던 우리 조상들의 정서와 한국인의 ‘멋’사이에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우리는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우리 조상들의 삶속에 많은 멋이 숨 쉬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근거로서 문화유산 속에서 발견되는 풍부한 해학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배비장전.이춘풍전, 춘향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끈 소설이나 판소리에서 해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모든 해학 속에 멋이 담겨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비속으로 흐르지 않은 절제된 해학은 멋과 바로 연결된다. 특히 웃음거리가 된 대상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바탕에 깔린 해학은 그 여유로움과 따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 멋을 느끼게 한다.


2) 풍류를 즐겼던 인물들
조선후기 시회를 그린 한 그림을 보면 뒤쪽의 시냇물로부터 아래쪽의 시냇물에 이르기 까지 그 물가에 시인묵객이 앉아 물에 띄운 술잔이 자기 앞에 떠내려 올 때까지 詩 한수를 지어야 하는 詩 놀이를 알 수 있다. 신라 말의 포석정 술 풍류와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시사회는 서대문 밖 연못에 밤에 배를 타고 가서 동틀 무렵 연꽃이 피는 그 오묘한 소리를 듣기위해서 밤샘을 한 뒤 그 연꽃 피는 소리를 시로 짓는 경쟁도 했다.

윤두서의 ‘송하관폭도’가 보여준바, 혼자 칠현금을 내려놓고 자연의 풍류와 자기 자신만의 풍류 쪽을 즐기는 경우도 많았다. 중국의 풍류적인 세계에 도잠의 무현금세계나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둘 사이의 선택된 우정 따위로 구름.바람.달과 함께 사는 神仙으로의 취흥과 시흥을 누린다. 연산군은 매우 풍류적인 시를 썼으며 대궐 안에 鶴을 길러 그 학에게 낭랑한 글 읽은 소리를 들려주어 학이 지긋이 눈을 감는 것을 감상하거나 새벽에 꽃에 맺힌 이슬을 모아 그 학의 벼슬을 닦아주면 더욱 눈부신 붉은 빛을 내는 것을 음미하는데 이런 것도 굳이 풍류에 속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원효의 스승인 대안이나 혜숙과 같은 탈속의 낭인들이 있다. 대안은 높은 수행자이면서도 그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세속과 수행을 차별하지 않고 밤에는 창기와도 어울렸고, 혜숙은 형산강 기슭에서 그 강물 속에서 고기를 잡아 술안주로 삼았는데 오줌을 누면 먹었던 고기가 오줌 속에서 펄떡 펄떡 살아나 강물 속을 헤엄쳐 갔다는 오어사의 전설을 남길 정도의 무해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풍류 혹은 풍류정신의 멋스러움의 핵심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다. 농경사회의 나만의 세계가 아닌 두레의식이나 공동체적 협동정신은 놀이문화에서도 잘 반영됨으로써의 강강술레와 같은 지극히 아름다운 달밤의 원류야 말로 ‘나’로부터 ‘우리’로 된 대동적인 風流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민들의 勞動과 놀이야 말로 언제나 집단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공평과 무사의 자연스러운 취락세계를 이루어 온 것이다.

한반도 각처의 민요인 아리랑들의 흥과 한도 혼자의 세계를 부정하고 너의 나 혹은 여럿의 세계를 공급하려는 순연한 의도와 맞물려 있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는 단순한 사랑의 원념이 아니라 너와 내가 더불어 사는 삶에 희구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더불어 살아가기의 공공성이야 말로 민중속에서 계승되는 자기중심적 가칭의 극복에 기여하는 힘인 것이다.

‘아리랑’의 고장인 진도 지방에는 실로 멋진 밭두렁의 서민적 풍류의 광경이 있어 마땅하다. 보리밭을 매는 아낙네들 한 20여명은 마을의 할머니나 중년아낙 그리고 처녀까지 망라되었다. 그들의 일은 딱히 고된 것만은 아니리라. 일에 익숙한 손길이라 풀에 닿기만 해도 그 풀이 뽑히는 것이다. 그런 밭일을 하다가 한 아낙네가 호미를 든 채 일어서며 덩실 덩실 춤을 추며 어느덧 신명나는 노래판이 벌어지는 것이다.그럴 때쯤 때 맞춰 그런 밭과 밭 사이로 난 큰 길에 타처에서 오는 의젓한 남정네가 나타난다. 그때 한 아낙네가 그 남정네의 앞의 길 한복판에 멱셔리를 던져 놓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노래 한 자락 뽑지 않으시면 그 멱서리를 넘어갈 수 없는 줄 아시오” 남정네가 노래 한곡을 부르면 되는 일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돼지 멱따는 소리라도 내야 그 막힌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실로 이만한 멋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풍류 풍월도의 현재화를 위해서는 우리는 서구 모방적인 댄디즘이나 저질의 멋 부리기 따위와의 결별이 요구된다. 풍류가 음풍농월의 수작인가. 풍류가 미생물학적인 놀음인가. 풍류가 자기도취와 자기 과장의 장난인가. 그렇다면 중생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보고 茶 맛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茶의 향기를 귀로 듣는 일이 그저 멋진 역설일 뿐인가. 이 고도의 경지가 그저 멋쟁이의 소리일 뿐이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을 터이다. 풍류는 현실에서나 논리로서 가시적인 것만이 아니라 전혀 형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신령으로서의 자연이며 우리는 그 자연에 미적 윤리행위로서의 무형 문화적 성찰을 바치는 것이다.

군민행사인 ‘풍류와 멋’의 첫 번째 큰 행사가 성공리에 잘 갈마무리 되기를 바란다. 만연사로 가는 가꾸어진 공원길 바람제의 산림공원길에 세워진 팔각정과 모정에서 옛 선인들의 풍류와 멋을 즐기되 자연을 감상하면서 오물이나 화투놀이 방자한 아이들의 무분별한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군민들의 아늑하고 고요한 정서적 휴식 공간이여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잊지 말았으면 한다. 고달픈 현실 생활 속에서도 늘상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갈 줄 아는 삶의 지혜와 멋을 가리켜 풍류라 한다.

이러한 멋이 정서적 생활 모습으로는 歌舞를 즐기고 철따라 물 좋고 산 좋은 경관을 찾아 노닐면서 자연과 기상을 키워 나가는 생활로 드러나는 화순 군민의 삶의 질을 높인 문화행사로 풍류가 더욱 돋보이기를 바라고 싶다.

이경재 선생은  한국교원대 대학원(동양철학). 광주숭의고 정년 퇴임. 대학 출강. 한국문인협회, 광주문인협회. 광주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홍조근정훈장 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