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주자학(朱子學) 학술대회 성황

문화/체육
2022 주자학(朱子學) 학술대회 성황
- 성리학의 시초 '주희' 를 모신 전국 유일 사당
- 적벽과 연계된 화순군 관광 사업 발달 기대
  • 입력 : 2022. 12.07(수) 10:51
  • 박준희 기자
[화순군민신문=박준희 기자] 유교 사상을 체계화한 학문인 주자묘는 고려 말,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매김하고 모든 국가의 제도의 토대가 된 학문이다. 조선 500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성리학의 근간이 되는 주자학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의 주자(朱子)이다.

쌍봉사를 비롯한 역사적 자원이 있는 화순에는 주자학의 시조 주희를 모신 전국 유일의 사당인 주자묘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가운데 주희를 주향으로 모신 사당 주자묘(朱子廟)를 먼저 살핀다. 주자(朱子)는 누구인가. 주자(1130∼1200)는 중국 남송시대의 인물이다. 성리학자이면서 사상가, 철학자, 교육자, 시인으로 '주자문집', '사서집주' 등 120여 종, 4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주자학의 시조로 불리는 주자 희(熹) 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인물로써 남송 시절에는 탄압을 받는 아픔을 겪었으나 사후 그의 사상이 인정받은 뒤로부터 성리학은 명, 청, 조선에 이어 에도막부에서도 관학의 지위를 얻게 되는데, 명나라·에도막부와 다르게 조선은 성리학이 모든 제도와 문물을 정비하는 기본 원리로 삼아 500년의 역사를 겪은 조선에서 성리학이 주류 학설로 자리잡았다.

주자학은 주자의 증손인 청계 주잠(朱潛) 에 의해 도입되었다. 1224년 주잠이 고려로 망명을 하면서 몽골이 남송을 쳐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한 남송에 크게 실망한 주잠은 ‘오랑캐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7명의 학사와 가족을 데리고 남송을 떠나 고려로 향한다.

주잠은 나주 영산포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이후 원나라의 압송 요구를 피해 지금의 화순 능주인 능성으로 숨어들어 신안 주씨(新安 朱氏)의 시조가 됐다.

주자묘는 1905년 신안 주씨 문중에서 창건했다. 처음에는 영모당(永慕堂)으로 건축했다가 1978년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재축됐다. 사당 안에는 신안 주씨의 시조인 청계공 '주잠'을 포함해 모두 6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해마다 5월 5일이 되면 전국에서 신안 주씨들이 모여 이곳에서 제례를 지낸다.

주자묘는 전체 2단으로 조성됐다. 부지 상단에는 사당 구역이 위치하고, 하단에는 '동서재'라는 강학 공간이 들어서 있다. 상단과 하단 주위는 담장이 반듯하게 둘러 있고 각각의 구역에 삼문이 있다. 주자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한옥형 건물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공포는 중앙 칸에 3구, 양 협간에 2구를 놓은 다포식이다. 건물 외부에는 단청이 화려하게 되어 있고 벽에는 주희의 삶을 조명한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난 2011년 화순군 향토 문화유산 제53호로 지정된 주자묘는 성리학의 시조인 '주희'라는 역사적 인물의 사당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 전국에서 유일한 주자 사당이라는 희소성을 가진다.

이에 화순 주자학보존연구회는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주희‘ 의 사상을 개승하고자 노력하였고 올해도 전국의 저명한 주자사상 학자들을 비롯한 약 1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2 주자학학술대회‘ 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주형식 주자문화보존회 사무국장은 “중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주자 선생 위폐를 모시는 사당인 주자묘(朱子廟)가 있는 유일한 곳이 화순” 이라며 “주자묘를 비롯해 적벽과 같은 화순군만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문화자원과 연계하여 장차 화순의 인지도 제고와 더불어 관광 사업 발전에도 큰 기대를 보였다.

박준희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