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

기고
모든 생명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
동물들도 제명을 다해 살 권리가 있다. (3)
  • 입력 : 2022. 10.13(목) 11:25
  • 박준희 기자
시적암에서 법일
[화순군민신문=박준희 기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성가(가스펠)로 시작되었다가 대중화된 노래이지요.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 좋아 평소에 자주 듣고 따라합니다. 그런데 이곡을 들을 때 마다 “지구상에 수많은 동물 중에 왜 유독 사람만 사랑받으려고 태어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 하나하나가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모든 생명은 존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실제 상황은 ‘사랑받고 존중받는’ 것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지만 말이지요.

<가축은 동물이 아닌 상품일 뿐>
오늘날 대부분의 가축은 도살을 위해 키워집니다.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 위해 사육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체로 이들의 사육환경을 직접 본다면 어느 누구도 그 가축을 먹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이른바 <공장형 축산>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데요. 이렇게 키워진 가축은 더 이상 동물이 아닙니다. “돼지가 동물이라는 생각을 잊고 그냥 공장의 기계인 것처럼 다뤄라. 짜인 시간표대로 다루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라고 한 미국의 양돈업자는 말합니다.
또한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가축들은 최대한 작은 공간에서 키워집니다. 한 사람이 수천 마리에서 수만 마리의 가축을 돌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좁은 집약적 환경은 가축에겐 최악입니다. 돼지의 경우 살을 찌우기 위해 앉고 서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좁다란 우리에서 키웁니다. 또 서로 물어뜯지 않도록 귀와 꼬리를 마취도 없이 잘라버리고, 바닥은 흙이나 지푸라기 대신 청소하기 좋게 콘크리트나 철판을 깝니다. 또한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암평아리는 서로 쪼지 못하도록 부리를 잘라냅니다. 소의 경우에도 좁은 공간에서 서로 찌르지 않도록 뿔을 잘라내기도 하지요.

<동물은 인간에 먹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
닭의 경우 케이지(Cage)식이나 배터리(Bettery)식 좁은 계사에서 사육되다 보니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쉬워 병에 걸리지 않도록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투여합니다. 돼지나 소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소의 경우 몸무게를 늘리기 위해 성장호르몬제를 추가로 투여합니다.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철분을 제거한 사료를 먹이며, 젖소의 경우 자연 상태보다 더 많은 우유생산을 위해 호르몬제를 주입합니다.
또한 운송과정에서 이들 가축들은 물이나 휴식조차 제공받지 못합니다. 스트레스와 비좁은 환경, 영양부족 등으로 병이 들거나 부상을 입고 죽기도 합니다. 이것이 공장형 축산이며 전 세계의 육류의 1/2은 이런 곳에서 자라고 생산(?)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어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어획량이 줄면서 공장형 양식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식용어류의 1/3은 양식장에서 길러진 것입니다. 기생충 예방을 위해 항생제, 성장호르몬제를 투입하고, 물고기 0.5kg을 생산하기 위해 자연산 물고기 2.2kg이 들어갑니다. 실제로 자연상태에서 잡힌 물고기의 1/3이 양식물고기와 가축을 먹이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집약적으로 생산된 식용동물들은 창고같은 공간에 갇혀 지내며 이용당할 만큼 이용당하다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살육당하는 것입니다. 동물이 학대당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냥, 투우, 로데오 등의 동물관련 유혈스포츠, 경마와 개경주, 식용말, 서커스, 해상공원의 범고래쇼, 동물원등이 동물권의 시각에서 볼 때 심각한 학대와 죽임의 현장입니다.

<동물복지 운동과 동물권옹호 운동>
동물보호에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동물복지(Animal welfare)라는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권(Animal Rights)옹호라는 개념입니다. 동물복지는 동물에게 통증, 고통, 불안이 없는 적당한 서식환경을 제공하여 육체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동물권옹호는 모든 동물은 인간의 필요와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동물이 한 생명으로서 고유한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동물권운동가들은 동물복지운동을 ‘인간을 위한’수단으로 동물을 대한다고 비판합니다. 물론 동물권옹호론자들도 방편적으로 동물복지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궁극에는 권리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동물들도 인간의 유용성을 넘어 <동물의 권리>옹호라는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면 애완동물로 불리는 반려동물의 현 상황도 불편한 측면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또 다른 형태의 동물착취일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인간은 닭, 돼지, 소의 육체(고기)를 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 고양이등 애완동물을 감정적으로 섭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인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애완동물을 이용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적적함을 달래주고, 위로가 되어주고, 편안하게 안심을 주는 기능을 하지만, 아무리 자애로운 주인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의 본성을 최소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불편한 시선>
정기적으로 발톱을 잘라주고, 짖지 않게 성대수술을 시키고, 꼬리를 짧게 자르고, 날개를 고정시키고, 샴푸와 향수로 애완동물을 씻고 단장하며, 긁거나 씹거나 영역표시를 하는 “지저분하고 파괴적인 습관”을 절제시키려는 거지요. 이러한 주인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실망시키면 꾸짖거나 벌하거나 심지어는 버려지기도 합니다. 결국 애완동물은 아무리 사랑이라는 이름을 이용한다고 해도 인간의 노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애완동물의 장래는 전적으로 “인간의 선의에 달려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사랑과 증오를 투사하며 이들 동물의 생사여탈을 좌우한다‘”는 것이지요.
실제 매년 반려동물들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주인의 눈밖에 벗어난 노예들이 당하는 처벌입니다. 이렇게 버려져 폐기되는 반려동물들의 상황은 정말 끔찍합니다. 이런 유기동물들의 30%는 안락사되고, 20%정도는 자연사합니다. 버려지는 이유는 순종만 고집하는 순혈주의, 공동주택의 주거형태, 훈련인식의 부재, 경제적인 부담 등 다양합니다. 이 모든 원인의 바탕에는 결국 생명에 대한 낮은 의식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반려동물이나 애완동물을 키우다 유기시키는 일은 그야 말로 <살아있는 장난감처럼 동물들을 취했다가 버리는 일>입니다. 결국 이는 동물의 삶에 대한 깊은 배려보다는 자신의 기호와 취향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천박한 생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다 행복하라!>
같은 공간을 나누고 사는 생명들이 서로 아끼며 공존해야 한다는 생명의식이 형성되지 않는 한 생명이 생명을 앗는 비극은 되풀이될 것입이다. 생명은 장난감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찮은 벌레라고 해도 그것은 사람이 기계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극도로 섬세한 조직을 갖춘 고결한 생명입니다. 모든 생명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동물의 하나인 사람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면, 동물도 역시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박준희 기자 hoahn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