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읍내 남서쪽, 소방서와 공설운동장 사이에 작은 들판이 있다. 이제는 지역 토박이들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학사리들’이다. 이곳도 개발로 인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어 언제까지 들판의 형태를 유지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오랜 옛날부터 이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다. 화순 대리 석불입상(전남 문화재자료 제243호, 사진)이다. 화순의 얼굴로 불리는 이 석불은 학사리 석불 또는 벽라리 민불이라고도 한다.

석불은 높이 350cm, 두께 56cm, 너비 90cm 크기의 사각 화강암이다. 앞면에 상호를 돋을새김으로 새기고 나머지 신체는 선으로 처리했다. 지역에서는 흔히 미륵불이라고 하지만 연꽃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 민머리여서 지장보살 같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마을사람들은 이 민불을 화순에서 탄생한 진각국사 혜심(1178~1234) 스님으로 여기고 있다. 석상의 상호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온화하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송광사 국사전에 모셔진 진각국사 진영과 같아보인다. 추정컨대 이 민불을 조성한 이는 화순사람의 얼굴을 보고 새겼을 것이다. 그러니 화순의 얼굴임에 틀림없다. 진각국사는 송광사에서 정혜결사를 주창한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법을 이은 2번째 국사이다.

이곳에 화순의 얼굴, 진각국사를 조성한 사연은 이러하다. 민불이 서있는 ‘학사리들’은 진각국사 탄생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고려중기, 엄동설한인 어느 날, 화순읍내에 살던 처녀가 자치샘(진각국사의 자취가 남아있다는 뜻의 우물)에 물을 길러갔다가 우물에 떠있는 참외를 먹고 수태하여 옥동자를 낳았다. 집안에서는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며 읍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정자나무 아래에 버렸다. 그런데 어디선가 학들이 날아와 날개를 펴고 아이를 보호했다. 마을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아이를 다시 데려다 길렀다. 그 아이가 자라서 나라의 스승인 국사가 된다. 진각국사이다. 갓난아이를 내다 버린 곳은 학들이 날아들어 아이를 보호했다 해서 학서도(鶴棲島), 또는 학정자라 부른다. 학서도 앞의 들판이 ‘학사리들’이다. 후에 사람들은 화순이 낳은 인물, 진각국사를 기리고자 학사리 들판의 언덕배기에 민불을 새겨놓은 것이다.

학서도에는 천년수령을 자랑하던 정자나무가 있었다. 아쉽게도 1927년 소를 치던 아이들의 불장난으로 소실되었다고 전한다. 화순군은 1997년 이곳에 학서정(鶴棲亭)이라는 정자를 세워 진각국사의 흔적을 남겼는데 지금은 정자마저도 없다.

기사출처:불교신문3272호, 이준엽 광주·전남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