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선생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며칠 후면 돌아온다.
고향을 떠나 살던 사람들이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생활터로 살던 객지에서 생존하신 부모형제나 이미 고인이 되신 조상님을 찾아 귀성길을 재촉하게 될 것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마음의 보금자리이기에 여러 대로 살아 내려오는 곳이며 조상들의 산소가 있는 곳이다. 하여 상지지향(桑梓之鄕)을 잊지않고 객지에 살면서 명절을 맞게 되면 어느 새 가슴 깊숙이 머문 추억들이 어린시절로 우리를 불러 들인다.

그러나 古稀를 넘기는 老年이 되면 인생이 그려낸 일상들이 기억에서 히미해지거나 이미 망각의 늪에 띄워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진다. 우리들 삶은 분명 과거의 시간을 줄로 삼고서 줄타기하는 재주꾼처럼 살아왔고, 현재의 시간에서 주저앉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과거 시간은 분명 현재의 원인이 되고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면서 미래의 원인이 되고, 미래는 현재의 결과 보여지는 삼세인과론(三世因果論)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간직된 것은 거의가 고향의 따뜻한 情일 것이다.

지난 세월 속에는 추석을 앞두고 철 이르게 익은 올벼의 쌀을 가지고 짓는 밥으로 조상님께 감사드리고 처음 맛보는 가정행사인 올벼新米는 동네사람들을 불러 저녁 한 끼를 대접하는 마을 행사가 되었다. 인간의 정을 쌓아가던 고향의 정취였다.
아직 덜 여문 벼를 익기 전에 품앗이 하여 쪄서 말려 찧은 쌀로 지은 밥에서 풍기는 냄새는 지금도 코에 와 닿는 듯, 구미를 당긴다.

옛날에 비해 명절 분위기가 너무 많이 달라져 예전엔 고향의 부모형제를 찾아 下京했던 일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부모들이 자녀를 찾아 逆上京하는 새로운(?) 풍속이 생겼다. 추석을 앞두고 성묘객으로 미리 찾아와서 선산 벌초를 하고 인사드리는 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出鄕人으로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몸소 표현하는 실천이 아닐까?

일년에 두세 번 귀성하는 길이지만 방문시마다 고향은 어릴 때의 옛 추석을 안고 반기고 있는데 유소년시절에 뛰놀았던 높은 바위는 어느새 작아져 버렸고, 마을 앞에 시냇물에서 河童이 되어 알몸으로 멱감던 자신을 이제는 찾을 수 없다. 아직도 기억 속에는 자맥질했던 시내의 모서리가 닳아 조약돌이 대신 몸을 적시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직도 시내의 한 복판에는 예전처럼 속살을 내보이는 하얀자갈이 구르고 있고, 친구와 함께 물수제비 뜨는 경주를 했던 냇물은 아직도 말없이 흐르고 있는데 옛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없는 현실속의 그리움이 귀성객들의 가슴속에서 서성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고향 동네의 공동 휴식처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들돌을 들며 힘자랑했던 옛 어른들이 이미 이승을 떠나고 없고, 그곳에서 나무 오르기와 그네 타기를 하며 놀던 친구들은 白髮의 노인으로 변해 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당산나무로 불리우는 느티나무도 수령이 더해가며 그 형태가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마을의 역사를 간직하면서 묵묵히 서 있다. 하지만 추석연휴가 지나면 다시 생활터로 돌아가야 한다.

고향은 마음속에만 간직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