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장의 상설전시전

‘어둠 속 높이 선 이순신은 전신이 파랗다/ 온통 바다 아래 잠긴 듯하다/ …중략…/ 밤의 폐교 안은 내란으로 내몰린 바다처럼 들떠 있다// 아이들 소리 하나하나 풍선처럼 떠올라 사라진 하늘엔/ 별들만 왁자지껄하니, 은비늘 쌤통 뾰루지들이 돋아 있다’

위 시는 이하석 시인의 ‘폐교’ 일부다. 농촌지역 학교들이 학생 수 감소로 문을 닫고 방치된 곳들이 변화를 꿈꾸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광주 주변의 시군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교육당국과 지자체가 인수해 적극적 개념의 공간으로 변화를 꾀했거나 재력있는 사람들에 의해 매입된 폐교를 빼면 대다수 폐교의 활용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대개 아트나 교육 공간으로의 탈바꿈이 시도되지만 여전히 활용도에는 물음표가 찍히는 곳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작가들이 임대한 폐교는 높은 임대료와 여러 제약조건이 뒤따라 더더욱 변신을 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광주에서 승용차로 30여분 소요되는 전남 화순군 동면 복림길 4번지에 자리한 경복미술문화원(원장 이석원·옛 경복초등학교)이 이런 문제로 시름을 앓고 있는 대표적 공간의 하나로 보였다.

이하석의 시 ‘폐교’는 여느 학교나 갖고 있는 풍경이겠지만 유독 옛 경복초등학교의 풍경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경복미술문화원은 2002년 서양화가 이석원씨가 2001년에 폐교된 경복초등학교(경복분교로 격하돼 운영)를 임대 받아 그해 7월 문을 열었다.

애초 이곳은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가 있었던 곳으로 학교 인근 구암삼거리에만 5000여명이 거주할 정도로 번성을 구가할 때가 있었다. 오지나 다름없는 이곳에 번듯하게 2층짜리 학교(부지 3000평)가 들어선 것은 순전히 이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지역 유지들이 투자해 지은 학교로 직접 부지 매입에 나선 경우도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매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석원 원장이 임대를 받아 교육과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현재 녹록지 않은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처음엔 당시 회화와 도자기 등 30대 젊은 작가들과 경제적 부담을 덜겸 해서 이곳으로 들어왔다.

이 원장은 운영상 어려움을 실토했다. "막상 운영해 보니까 만만치 않았어요. 1년 임대료만 해도 1300만원에 달했습니다. 사비로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었죠. 그래도 2년째부터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체험학습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경복미술문화원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동안 레지던시 결과물 보고전이나 상설전을 열어 꾸준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곳에서 문화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온 셈이다.

2012년부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지난해까지 운영했다.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 이 원장의 고민의 행간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초창기에는 노정숙(판화) 이상목(도자) 양종세(조각) 등이 입주해 활동을 벌였다.

"레지던시는 기성 작가들보다는 대학을 갓 졸업한 30대 초반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운영했습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지원사업이 되면 다시 레지던시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시설이 조금 낙후돼 그렇지 작업하기에는 주변 환경이 너무 좋은 곳이죠."

지난해에는 거주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사업으로 결과보고전을 열었다. 2015년 11월13일부터 27일까지 ‘화순, 남겨짐에 관한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노여운 박기태 이다애 전승씨의 작품이 선보였다.

한때 여름방학을 활용해 미술교실 문을 열면 600~700여명이 모일 정도로 호응이 이어졌지만 리모델링 비용과 강사비를 포함해 1년 동안 소요되는 초기비용을 견딜 수 없는 등 실질적으로 문화원 운영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은데다 작업마저 어려워지자 결국 접어야 했다.

현재는 입주작가로 이 원장과 또 다른 작가 1명 등 2명이 활동중이며, 1층 전시공간에는 이 원장의 작품이 선보이는 상설전시가 진행중이다. 아울러 체험 학습은 신청을 해올 때 열고 있다.

이곳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의 조언도 듣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올해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원 휴식년제 탓에 구상했던 사업들이나 지속 프로그램을 접어야 했다.

경복미술문화원은 1층에 두곳의 전시공간이, 2층에는 이 원장의 작업실과 사무공간, 전남대 의대 산악팀 칼라팀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고, 부속건물에는 급식실을 활용한 도자기실 및 조각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초창기에는 이 원장이 어린이들의 편의를 위해 수영장을 직접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이 일대가 농촌이자 산촌인데다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평균 연령이 75세 정도로 프로그램 운영 역시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대내외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이 이 원장의 진단이다.

"무엇을 할 수 없는 구조가 가장 큰 맹점입니다. 뭔가 강구를 해야만 해요. 문화센터 등 다른 것들이 첨가돼야 할 것 같아요. 마을 사업과 연계해 같이 가야 하지, 독자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원장은 이런 공간들이 대개 1년 단위나 길어야 3년 단위로 임대를 잡아주다보니 연속성이 떨어지는 현실적 한계를 잊지 않았다.

"거동이 괜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중이지만 자가로 운영비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곳도 이용하는 다른 두 사람 정도 해서 돈을 모아 임대료를 내고 있어요. 일반 사업이나 커피숍, 장사 등 이런 것들이 절대 불가능한 곳이에요."

이씨는 폐교활용특별법이 있는데 오히려 이게 제약이 되고 있다는 믿음이다.

필자가 문화원 내부로 들어서 놀랐던 풍경이 곳곳이 비가 오면 물이 새 그것을 받기 위해 놓아둔 플라스틱 통들이 여러개 계단에 놓여져 있었고, 천장에는 페인트들이 들고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녹이 슨 문들도 눈에 들어왔다.

"사업가라면 비 새는 건물도 보수하고, 전체 페인트칠도 다시 하는 등 보수를 할 수 있겠지만 화가인 저로서는 어렵습니다. 지자체에서도 폐교를 장기 무상 임대, 문화시설로 리모델링을 해 우리들에게 임대를 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이 원장은 교육당국의 탄력적 운영(융통성 발휘)과 임대기간 제고를 통해 활력을 되찾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대료가 비싼데다 폐교활용특별법이나 전라남도 조례에 10년 임대가 언급돼 있지만 말썽 등 잡음을 우려해 임대기간을 토막내 더욱 활성화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이런 여러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사)에뽀끄 행사를 위해 지난 2008년 환경개선을 하기도 했다.

폐교 활용과 관련해 다른 지역의 사례도 빠뜨리지 않고 들려줬다.

"폐교는 전라남도가 가장 많아요. 그런데 경상도를 갈 기회가 있어 그곳에 가봤더니 거의 90%가 리모델링해 잘돼 있더라구요. 1~2군데는 매입하고 나머지는 임대해 지원이 잘되고 있어 우리 환경과는 격세지감이 느껴졌습니다."

운동장에 잔디를 심었는데 어느새 잡풀들이 점령했다. 경복미술문화원이 처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친환경 때문에 농약을 칠 수도 없다는 이야기다. 우선 가까운 시일내로 풀들을 벨 생각이지만 풀베기 역시 이 원장에게는 만만치 않은 일상이 될듯 싶어 보였다.

돌아오는 내년에는 경복미술문화원이 다시 지원사업에 선정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원장의 고민이 깊어간다.

하지만 경복미술문화원은 그동안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호응을 얻어온 만큼 레지던시에서부터 각종 체험과 전시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기사제공 광남일보 고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