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 문병란선생 100일추모제날 국조전 하늘

丙申년의 밝은해가 떠오른 새해 벽두.

지난 해 9월 타계한 故서은 문병란선생의 100일 추모제가, 선생이 생전 몸담았던 ‘서석풍아회’주관으로 국조전 홍익재에서 열렸다.

개최시간을 잘못 연락받아 한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한 국조전 주변은, 가신 님의 맑고 투명한 영혼이 다시 찾아온 듯, 한 겨울 임에도 불구하고 봄처럼 파릇파릇 돋아난 이름모를 풀과 양치류식물들이 이끼낀 바위 틈사이에 자라고 있었다.

개울에서는 선생의 ‘희망가’ 같은 시냇물이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이른 아침 자욱하던 안개는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과 햇살에게 양보하며 스러져 갔다.

일찍 도착한 참석자들은 生前 선생의 고매한 인품을 기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며, 겨울답지 않게 ‘푸근한 일광이 온 대지를 감싸는 것’에 대해 ‘하늘에서 선생이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정훈국회의원은 추모사에서 “선생은 교육자 이전에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면모와 책무를 다하신 분이었다. 선생의 뜻을 받들어 우리가 처한, 오늘의 민초들의 삶과 민주주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유신독재체제 하에서 지식인의 양심을 보여준 선생을 기렸으며, 구충곤화순군수는 “시대의 아픔을 詩로 승화시킨 선생은 이시대의 진정한 큰 어르신이었다. 항상 통일을 염원한 민족시인이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민족의 자주평화통일을 기원하셨다. 오늘의 추모제가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선생의 영원한 안식을 빌었다.

한편, 오늘 추모제를 총괄지휘하느라 분주한 春谷강동원박사는, 松竹처럼 올곧았던 선생의 心志를 옛杜甫의 정신에 비유하며 “붓 만들면 금장옥구(金章玉句)가 수용산출(水溶山出)로 수(繡)놓았으니 이는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의 시취(詩趣)라 하겠다. 몸에 밴 겸양의 미덕은 모든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안일이 넘쳤고, 동서고금 박학다식한 높은 지성은 명실공히 남도문단의 거목이셨다. 또한, 불의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당당히 맞섰으며 환란이 걷히자 의연히 교단으로 돌아와 군자삼락(君子三樂)을 실천하셨으니 어찌 큰 스승으로 흠앙치 않겠느냐?”며 한국시단의 거목으로 후학의 거울이 되듯 천상에서도 큰 별이 되어 생전에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통일과 이 땅의 문화창달에 서광을 내려주기를 기원하는 애절한 추모사를 했다.

1부 추모식과 2부 추모제로 나뉘어 진행된 행사는 김준태시인의 추모시 낭송, 작헌례, 선생의 시낭송, 박문옥가수가 부른 추모가 ‘직녀에게’, (사)내벗소리 민족예술단의 연주와 승무, 선생의 장남 문찬기씨의 유족대표인사와 헌화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행사를 주관한 서석풍아회는, 1998년 문병란, 박진동, 강동원, 정남 등 뜻 있는 지역의 선비들이 무등산 아래 이십곡리 국조전에서 중양절의 민족문화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작은 모임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음악으로 우리 가락의 아름다움에 또 흠뻑 빠져드는 것은 물론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지면서 지역문화 창달에 큰 의미를 갖게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