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기 화순총상가연합회장

지금은 국력을 평가 할 때 국가 간의 신뢰가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신뢰는 약속을 잘 지키는 데서 형성 되는데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물론 정부와 국민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신뢰는 중요한 덕목이다.

요즘같이 대통령 주변에 충언하는 이가 없으면 백성이 편할 리 만무하다. 정치가 꼬이니 정치인이 갈지자 행보 하고, 언론이 춤을 추게 되니 그럴 만하다.

비근한 예로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약속한 기초단체장 공천제도 폐지가 헌신짝처럼 버려질 형편이다. 그럼에도 여권에서는 장단 맞추기에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누구 하나 약속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충언을 하는 장면이 없다. 간신들만이 판을 치니 참으로 한심한 광경이다.

옛날만도 못하다.
춘추전국시대 폭군으로 불리는 진시황에게도 간언(諫言)을 듣는 시도가 있었다. 중국의 한 학자가 펴낸 ‘종횡설변 101책’에는 그 일화가 소개돼 있다. 열여덟 번째 책략-당두방할 편은 감히 진시황을 꾸짖은 제 나라의 ‘모초‘ 이야기로 흥미롭다.

내용은 이렇다.
진시황은 당시 행실이 부정한 황태후의 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

 태후와의 사이에 아들 둘을 둔 노애가 방탕한 생활에 황제를 의붓아버지라 칭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신하와 다투다 황제의 노여움을 산 노애는 처형당할까 봐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했다. 그리곤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태후마저 감금한 진시황은 누구라도 태후의 일로 간언한다면 목을 치리라고 명령했다.

 진나라 여행 중 함양에 이른 ‘모초’가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하고 나섰다. 이미 간언했다 죽임을 당한 신하들이 27명이나 됐기에 간언할 엄두도 못 낼 처지였는데도 말이다. 하늘 위에는 28개의 별자리가 있다는데 죽은 사람이 27명이니 이 숫자를 채우고 싶다던 그의 간언은 이랬다.
“듣건대 산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나라가 있는 사람은 망국을 꺼리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죽음을 꺼린다 해서 반드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망국을 꺼린다 해서 반드시 나라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사존망의 이치는 밝은 임금께서 알고 싶어 하는 것인데 그것을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진시황이 궁금해 할 수밖에.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모초는 ‘방자하고 불경스런 행위를 저질렀는데도 모른단 말이냐’는 반문 끝에 이리 말했다. “폐하는 의붓아버지를 수레로 찢어 죽였으니 시기하는 뜻이 있습니다. 두 동생을 자루에 넣어서 때려 죽였으니 자애롭지 못하다는 명성이 있습니다. 모친을 부양궁에 연금했으니 불효한 행위가 있습니다. 가시나무로 사람을 때려 죽였으니 걸왕이나 주왕의 잔인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진나라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저는 진나라의 멸망이 두렵고 폐하께서 위험에 봉착할까 근심스럽습니다. 이제 할 말을 다했으니 죽여 주십시오”

모초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궁금하다.

진시황은 그를 사면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둘째 아버지로 삼으며 상경의 작위까지 주었다. 황태후가 풀려났음은 물론이다. 죽음도 마다 않은 그의 간언은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며 헤맨 진시황을 깨닫게 했다.

한때나마 원수처럼 갈린 모자 사이를 원상회복하게 했다. 나아가 민심이 흉흉한 진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일조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성공과 실패는 그 곁에 어떤 부류의 인사를 두느냐의 문제로 결론이 났다.

즉 간언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의 여부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권력자 주변에는 아첨, 아부로 환심을 사려는 이들로 득시글득시글 한다. 수없이 역사를 통해 확인하며 배워 왔다.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는 ‘성공한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란 어떠했는가. 모름지기 사람을 잘 쓰고 사람 말을 잘 듣는 경청과 관용, 화합의 덕목을 갖춘 자라야 가능했다. 이리저리 민심이 갈라졌는데 그 민심을 괘념치 않아도 된다고 말한 사람을 주변에 두면 결론은 항상 나쁜 쪽이다.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로부터 표를 얻으려 갖은 수를 쓰며 많은 것을 약속하곤 한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마찬가지. 당선되고 나면 그만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려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의기양양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그 이치는 변하지 않았을 터다. 경제민주화나 기초연금액 증액 포기에서부터 기초단체장 공천제 폐지의 철회에 이르기까지 국민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던지기 일쑤인 현재의 모습은 과연 어떤가. 옛 중국의 모초 같은 간언자가 대통령 주변에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 싶다.

오늘의 정치가 제 아무리 2200여 년 전과 정치적 사회적 군사적 배경까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고 한들, 성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치는 결코 다르지 않은 까닭에서다. ‘겸허한 철인 황제’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대목이 귓전을 울린다. “저쪽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이쪽을 보라. 언제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고 침착하고 단순하게 행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