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에 함박눈이 내렸다.
어제는 무슨 서러움에 흐느끼듯 날리던 진눈깨비가
오늘은 침묵하며 조용히 쌓이고 있다.

눈 오는 지도(地圖)/윤동주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歷史)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눈발 흩날리던 어제의 수만리 길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꽃은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오늘의 함박눈을 내리기 위해 어제의 하늘은 저렇게 회색빛 흐느낌을 간직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