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뒤 끝이 좋아야 한다. 서로 사랑하고 좋아서 결혼했지만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이혼으로 마무리 해야 할 때도 있다. 이혼이 반드시 나쁜 것이라는 등식도 없다. 갈등과 반목으로 남남처럼 사느니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현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어질 때는 깔끔해야 한다. 앙금이 남아서는 안된다.

최근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 달에 약 9,400쌍 정도가 이혼한다고 하며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특히 요즘은 국제결혼이 많아 다문화가정에서 적응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고,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짐에 따라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하고 헤어지는 심리도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이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본 마음이 아닐지라도 이혼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신혼 때의 환상이 허물어져가는 40대와 50대가 가장 문제다. 왕성히 활동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지만 돈도 많이 들어갈 때이고 인간관계도 복잡해서 고민과 갈등이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고생하고 퇴근했는데 밥도 안차려줄 때, 몸이 아픈데도 나몰라라 할 때, 눈만 뜨면 돈돈돈 할 때, 바람피우는 기색이 보일 때, 갱년기여서 괜히 짜증만 부릴 때. 술만 먹으면 행패부릴 때, 의처증 낌새가 있을 때, 말도 안하고 끙하고 있을 때 그냥 접고 싶을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도 여태껏 살아온 정으로 한편으로는 아이들 생각해서 백 번은 참고 더 참아야 한다. 그러나 한계점에 도달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비로소 이혼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는 것이다. 화순의 조그만 도시에서도 하루에 몇 분은 이혼 상담하러 오신다. 그 분들을 굳이 분류해 본다면 이혼해서는 안 될 분, 이혼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분, 꼭 이혼해야할 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중요한 잣대는 부부간의 신뢰와 재산문제이다. 몇 마디 나누어 보고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이혼해서는 안될 분과 그냥 그런 사람은 별거를 하든 지지고 볶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년해로 해야 한다. 문제는 이혼할 수밖에 없는 부부이다.

법적으로 이혼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 자동이혼제도는 없다. 협의이혼은 둘 다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합치될 때 하는 것이고 재판상 이혼은 어느 한 쪽이 이혼에 응해주지 않을 때 하는 것이다. 전자는 둘이 뜻만 맞으면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할 수 있지만 재판상 이혼은 상대방의 잘못된 사유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가능하다. 법에서는 그런 사유로 6가지를 들고 있다. 배우자의 불륜, 악의의 유기, 심히 부당한 대우, 3년 이상 생사불명, 기타 중대한 사유가 그것이다. 따라서 이혼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런 사유 중 하나 이상의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단순한 성격 차나 마음에 안 든다는 정도로는 되지 않는다. 불륜도 6개월이 넘으면 안된다. 의처증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정도가 심하면 사유가 된다. 잠자리를 장기간 거부하는 것도 증명이 이루어진다면 가능하다.

가장 아름다운 해어짐은 합의이혼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실상은 어떠한가. 왜 협의이혼을 하지 못하고 재판까지 가게 되는가. 이혼시 남는 문제를 보면 위자료문제, 자녀 양육문제, 재산분할 문제가 대표적이다. 역시 돈 문제인 것이다. 협의이혼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결국 재산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일방은 어떻게든 돈을 안주려 하고 타방은 죽기 살기로 빼앗아 오려 한다. 그것도 원사이드(one side)가 아니라 일정부분은 서로 나눠가지면서 나머지 자투리 조금 가지고 싸우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문제가 타협이 안되니 협의이혼은 생각지도 못한다. 결국 이혼소송까지 가는 것이다. 소송이 이루어지면 막다른 골목까지 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번 이혼 법정을 들여다보자. 방청석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저 사람들이 한 때 부부였나 싶을 정도로 살벌하다. 칼만 안 들었지 그야말로 전쟁이다. 상대방을 무너뜨려야 내가 이기기 때문이다. 인정사정 봐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변론 기일을 한 두 차례 거치다 보면 애지중지하던 부부가 남보다 못한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다. 상호간에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린다. 없는 소설도 쓴다. 상대방의 모든 치부를 샅샅이 드러내놓는다. 외도, 폭행, 도박, 의처증, 카드돌려막기, 시부모 구박, 부부관계, 사업실패, 잠버릇, 술버릇, 코고는 것 등등 큰 것에서부터 시시콜콜한 잔챙이까지 온갖 잡동사니를 시장에 다 쏟아놓는다. 그야말로 만물상이다. 공개 법정에서 이루어지므로 이웃사람, 가족, 친구들도 다 알게 된다. 그야말로 부부간의 은밀한 부분까지 몽땅 노출된다. 이렇게 해서 이긴다 한들 남는게 뭐가 있을까. 변호사 좋은 일만 시켜주고 상대방에게서 찾아온 얼마간의 재산정도?

왜 이런 주절주절한 이야기를 늘어놓겠는가. 이혼하지 않고서 사는 것이 가장 낫고 이혼하더라도 아름답게 헤어지라는 것이다. 이혼하지 않으려면 좋을 때 잘해야 한다. 서로에게 조심하고 서운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남한테는 잘하면서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소흘히 하는 경향이 있다. 하기사 좋은 물건은 시장에 내다 팔고 자기는 안 좋은 것만 먹고 사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남한테는 약속을 잘 지키면서도 가까운 사람에게는 약속을 밥먹듯 어긴다. 바깥에 나갈 때는 분단장도 하고 옷매무시도 다지지만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하고 다닌다. 다른 사람한테는 따뜻하고 상냥하게 굴면서 가족에게는 피곤하다며 짜증만 내고 눈 길 한 번 제대로 안준다. 알아서 새기겠지 지레짐작하면서. 집에서 조차 그런 것까지 다 챙기고 숨막혀서 어떻게 사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습관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몸에 베면 오히려 그게 편하다. 나는 가끔씩 말한다. 돈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좋은 말만 하고 남이 들어서 기분 좋은 말만 하고 다니라고.

자,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어 이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다달으면 어찌할 것인가. 협의이혼으로 끝내고 재판까지 가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재판까지 가고 싶어서 그러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냥 달라는 것 다 준다는 자세로 협의에 매달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도 안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남아 있는 것 한 푼 더 챙기려는데서 생긴 갈등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혼할려고 마음 먹었으면 사전 전략이 필요하다. 이혼은 나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혼하고 싶은데 유책배우자가 이혼해 주지 않으면서 세월아 내월아 버틴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치밀한 워밍업이다. 최소한 6개월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직장을 그만둘 때도 이 정도의 여유는 갖고 마음을 다지는데 하물며 평생을 같이 해 온 부부가 갈라서는데 이 만큼의 투자도 안한다면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상대방에게는 안된 이야기지만 몰래 몰래 조금씩 상대방의 유책사유에 대한 증거를 수집해 놓아야 한다. 진단서, 집안 깨부신 현장사진, 대화녹음, 불륜현장 증거, 가족의 증언...등등. 그러나 여기까지만이다. 이런 증거수집 절차는 이혼협상할 때 카드로 써먹으라는 것이지 소송까지 가서 온 천하에 드러내놓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법정까지 들고 가면 안되는 것이다. 차라리 그럴바에는 달라는 것 다 주어버리는 것이 낫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누구 좋으라고! 그것 싸들고 가서 언놈, 언년 팔자고쳐줄 일 있어? 그렇게는 못해. 버렸으면 버렸지”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상대방이 행복하다면 둘 다 불행한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이왕할 거라면 이혼도 멋있게 해야 한다. 이혼소송이라는 전쟁을 거친 부부치고 이혼 후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혼 후에도 부딪힐 일이 많다. 아이 양육문제, 학교문제, 결혼문제 등등. 한 번 맺은 연(緣)은 그리 쉽게 무 자르듯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행복은 이혼을 염두에 두면서 살 때 지켜질 수 있다고 본다. 평상시에 변함없이 사랑하고 아끼지 않으면 상대방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끊임없이 자가충전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잘한 의식도 허례허식이라고 내팽개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간단한 이벤트로 사랑을 확인해 주는 절차는 결코 낭비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보지도 않고 믿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혼인자동갱신제도.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도 2년 단위로 기간을 갱신하는 제도가 있다. 임대인 측에서 계약만료 1~6개월 전에, 임차인 측에서 1개월 전에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통지하면 해지되지만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치면 자동연장되는 원리로 결혼도 30년 주기로 1년 전에 통지하면 이혼이 이루어지되 특별한 말이 없으면 혼인이 자동갱신되는 제도 말이다.

그러면 서로 자동이혼당하지 않으려고 평상시 얼마나 상대방에게 잘 해 주겠는가! 물론 당분간 실현가능성은 없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좋을 때 잘해야 하고 잘해줄 때 고마워할 줄 알면서 살아야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배려하고 아끼면서 살아야 한다. 수고한다는 눈웃음 한 번,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소소한 행동들이 모이고 모이면 부부생활에 있어서 더 없이 소중한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신혼 초이든 중년이든 황혼이든 변치 않는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