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곡 강동원박사

물질문명 발달은 수질의 오염도 가져와 요즘은 정수기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생수(生水)를 구매하여 마시는 세대(世帶)들이 대다수이다.

어린 시절 집 안에 있는 우물에서 양철 삼각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마시기도 하고, 여름이면 등물도 하던 유· 소년시절 기억도 남아있고, 조금 성장하여 도시에 살게 되면서부터는 수도꼭지 틀면 졸졸 흘러나오는 수돗물을 받아먹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서글픈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편리한 만큼, 정신적으로 잃는 것도 정비례하여 많은 요즘.
기억 속으로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화순의 유명한 십정( 열 개의 우물)을 소개해볼까 한다.

소리면 소리, 서예면 서예, 사군자면 사군자, 다방면에 재능을 지닌 만능 엔터테이너, 향토사학자 춘곡(春谷) 강동원(姜東元)박사.
갈수록 냉랭해지는 일광(日光) 속에서, 깊어가는 추색(秋色)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10월 오후.
고향인 화순을 사랑하여 화순의 역사를 샅샅들이 가슴에 담고 있는 춘곡 강동원 박사에게 화순의 옛날 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너릿재 넘어 강박사 처소를 찾았다.

“화순초등학교 시절 학교 공부와 청소까지 마치면 12시 40분에서 1시쯤 되었지. 그 시각이면 허기가 지면서 배가 몹시 고파오는데,, 당산나무 아래 자치샘으로 달려가 우물가 바가지로 물 한 바가지 퍼서 마시면 얼마나 물맛이 좋고 시원했던지. 그리고 우물물로 배가 불러오면 그 기운으로 광덕리 3구 집까지 걸어갈 수 있었는데...자치샘(跡泉, 車泉, 향청리)이 없어진 게 한(恨)이 돼”

그동안 ‘최경회‧김천일‧고종후 의병장 합동 추모제’ 준비와 봉행하느라 심신이 힘들었다는 강박사는 기자의 눈에도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자치샘 이야기’를 시작하자 목소리에 카랑카랑 힘이 실어지면서 금세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자치샘 설화가 새겨진 비

■화순의 십정과 남산

화순의 옛 십정중 하나인 석간천 ‘자치샘’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옥에 갇힌 아버지의 방면을 기원하기 위해 새벽마다 자치샘에 정화수를 뜨러 갔던 처녀가 샘물 위에 떠있는 참외 두 개를 먹고 잉태하여 낳았다는,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출생에 얽힌 전설이 서려 있는 샘이다.

한국 삼보(三寶) 사찰 중 하나로 불교 16국사(國師)를 배출하여 승맥(僧脈)을 잇고 있는 승보(僧寶)사찰 송광사(松廣寺) 2대 주지, 진각국사의 자취(跡)가 깃든 샘이라 하여 ‘자취샘(跡泉)이라 한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와전되어 자치샘(跡泉, 車泉)이라 부르고 있다.

강박사 어린시절에는 자치샘 부근에 상가와 집들이 많았다고 하며, 동네아낙네들이 자치샘에서 빨래도 하고, 무우· 배추 등 채소를 씻으며 담소도 나누는 동네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한다.

또한, 자치샘 물맛은 철분과 염분이 없어 화순의 명물인 '두부'와 '기정떡'이 모두 이 샘물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하며, 물로 빨래를 하면 옷이 깨끗해지고 술을 빚으면 술맛이 좋았다고 전해진다고.

자치샘 외에도 화순에는, 남산을 중심으로 삼백보(三百步) 내외에 옛날 연방죽의 원수(源水)였던 땀때기샘(汗泉, 읍사무소 뒤), 날씨를 알려주는 신비스러운 안고삿시암(城內泉, 삼천리 성안), 해대(海臺)에 있는 동네샘 달샘(月井, 삼천리 해대), 십정 가운데 유일하게 식수로 이용되고 있는 매화천, 남화순역 주변에 있는 두레박섬 동천(洞泉, 삼천리 4구), 지금도 남산줄기를 따라  샘물이 흐르면서 십정원두의 의미를 잘 대변하고 있는 이름 없는 샘 , 남산 대나무밭 밑에 있었던 대밭샘(竹林泉, 상광덕), 벼락부자집 뒤란에 있던 옹달샘, 광덕리 '미나리강' 주변의 광덕천이 있었다

또한 현재 화순읍사무소자리에는 자치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여들었던 남산연(淵)방죽이 있었는데, 이 연방죽에는 여름이면 분홍빛 연꽃이 만발해 연꽃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고, 연못에는 붕어가 많아 큰 느티나무 그늘아래에는 낚시대 드리우는 강태공들이 많았으며, 겨울에는 방죽이 빙판으로 변하면서 얼음을 지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남산 십정위치도

▲지금은 사라진 남산 연방죽. 방죽가의 이팝나무는 지금도 읍사무소에 남아있다.(천안 김동석목사 소장 사진)

▲남산 연방죽의 겨울

■십정원두비(十井源頭碑)가 세워진 화순 남산

10개의 샘이, 화순남산(南山)에서 발원한다는 의미의 ‘십정원두(十井源頭)’

십정원두비(十井源頭碑)는 화순 남산입구에 세워진 비석으로, 1957년 화순경찰서장 김봉래(1956∼1958 재임)에 의해, 비문(碑文)은 당시 한학자(漢學者)로 명성이 드높던 덕은(德隱) 조갑환(曺鉀煥)선생의 좌서(左書)로 씌어졌다.

당시에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나쁜 기운이 물러간다고 해서 과거에는 일부러 좌서를 많이 썼다고 한다.

화순 십정의 발원지인 남산은 옛 기록에 화순읍 성황당이 있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1872년(고종 9년)에 제작된 ‘전라도지도’의 화순현(和順縣) 지도에 현재의 남산은 산산(蒜山)으로 기록돼 있는데, 달래 ‘산(蒜)’을 사용 것으로 보아 달래가 많았던 산으로 추정 된다.

또한, 남산은 꽃이 많이 피어 ‘꽃등’이라는 예쁜 이름도 갖고 있으며 ‘화산(花山)’이라는 기록도 있는데, 지금도 연로한 분들은 ‘꽃등’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고 한다.

▲남산 십정원두비

■아름다운 문화유산은 보존되어야 한다.

강박사는 사라진 옛날의 화순에 대해 가슴아파한다.

元老향토사학자의 애향심은 남아있는 화순의 문화유산을 지금부터라도 잘 보존하고 관리해 후손대대 자랑스럽게 물려주어야 하는 게, 현재를 살고 있는 화순군민들의 의무이며, 화순의 역사도 일부 왜곡된 것들은 정립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은 화순 샘 이야기를 들었고, 다음엔 또 다른 화순 이야기를 기약하며 나오려는데 강박사의 책상 옆 벽에 붙어있는 시조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山寺새벽

계곡을 깨우는 소리 산 딛고 일어서면
매달린 물고기도 쟁쟁쟁 깨어나고
동자승 엄마 부르며 산문으로 내달린다.

강박사의 간절한 화순 사랑이, 화순과 군민들을 일깨워, 화순의 역사가 퐁퐁 솟는 샘처럼 되살아나고, 후손들에게 찬란한 화순문화유산을 선물처럼 물려줄 수 있게 되기를 화순군민 일원으로서 바란다.

▲대문에서 바라 본 강동원박사 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