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창설 65주년을 맞아 10년 만에 국군의 날 행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군 사열과 서울 한복판의 국군행진, 함정탑재용 미사일, 스파이크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최첨단 정밀 신무기와 핵미사일도발 탐지 및 선제 타격을 위한 "킬 체인"시스템의 공개등 군사력을 과시하는 대규모 행사들이 포함되었다. 국방부는 북핵과 미사일에 대비능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 긴급 소요예산을 추가 편성, 2018년까지 킬체인과 KAMD에 7조5000억을 투입, 총 사업비 15조원대의 야심찬 국방계획을 발표했다.

하필이면 노후연금의 국민연금 연계등 복지공약 후퇴논란과 복지부장관의 사임 파동이 일어난 와중에 대대적인 군사력 과시와 4500여명의 시가행진, 천문학적 국방예산을 바라보는 심경은 착잡했다. 군복 비슷한 대통령의 의상과 거수경례도, 무력의 우위를 강조하며 북한에게 한수 교훈을 주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단호한 발언도, 웬지 무섭게 느껴졌다.

기실 엄청난 병력과 첨단(?) 무기를 실은 트레일러를 동원해서 무력을 과시하며 국민의 내부결속을 도모하는 군대 행진은 북쪽의 단골 메뉴가 아닌가. 우리는 그동안 민생은 뒷전이고 국방비에 모든 재화를 쏟아부으며 핵개발을 해온 북한의 호전성을 줄곧 비판해왔다. 이 시점에 남북이 모두 군사력 과시와 시가행진, 통치자의 독전발언 등 비슷한 강성대국의 모양새를 연출해야 할까. 결국 그것은 '무력충돌'의 또 다른 말이 아닌가.

그러나 선진 국군의 위상에 비해 3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여군에 대한 처우와 인식 수준이다. 때마침 군 장성 출신 여당 최고위원이 지난 2월 임신중 과로에 의한 뇌출혈로 숨진 고(故)이신애 중위에 대해 사망한 본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15조원대 예산 투입 국군 현대화

한기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고인이 "출근하지 말라는 상부 권유에도 시간외수당을 받기 위해 무리한 것으로 안다"며 "자기관리를 안해서 본인이 손해본 것"이라고 했다가 "70만 국군과 8400여 여군에 대한 모독"등 강한 반발여론에 부닥치자 사과했다. 하지만 옛 군사(軍師)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한 집권당의 인식수준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2002년 최초의 여군 장군 탄생(당시 국군간호사관학교장)을 축하하는 청와대오찬에 200여명의 영관급 이상 여군장교들과 동석, 카키색 군복정장 가슴에 갖가지 휘장을 단 멋진 장교들이 그렇게 많은 데 내심 감탄한 적 있다. 불편한 타이트 스커트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긴 했지만 당당하고 밝은 모습, 특히 같은 식탁에 앉은 전방 공병부대장, 통신부대장 등 그동안 간호장교 출신만 알고 있던 기자들에겐 의외의 전문직 장교들도 많았다. 2010년에는 전투병과에서도 첫 준장이 나와 총 5명의 여성장군 진급을 기록했다.

하지만 간단한 대화중에도 가족과의 별거 등 비인간적인 상황, 임신과 출산과정의 업무부담 등 일반 직장여성보다 더 심한 고민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신애 중위도 수당 몇푼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직적인 군대 내 조직 속에서 임박한 출산에 대비한 건강검진 등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어 무리한 근무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2월 임신 8개월의 몸으로 강원도 최전방부대에서 혹한기훈련을 하루 앞두고 뇌출혈로 사망했다. 육군은 이 중위를 일반사망으로 처리했다가 인권위 권고에 따라 순직으로 인정했다. 임신사망은 순직처리조차 어려운 것이 여군의 현실이다.

■국민 돌보는 모성적 초심 되찾았으면

1980년대만 해도 한 신문사 사주가 한 공식모임에서 "임신한 여기자가 꼴보기 싫어 요즘 편집국에 안 내려간다"는 발언을 해 여성계가 들고 일어나 사과를 요구한 사건까지 있었다. 언론계가 그럴 정도니, 전방부대 여군 장교가 "자신의 몸을 알아서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목숨까지 잃었을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여성대통령, 준비된 대통령"을 내세웠던 박 대통령은 장군같은 통치자의 면모보다는 선거유세 때처럼 국민을 돌보는 모성적인 초심을 되찾아야 한다.

수조원대 국방예산과 첨단무기를 과시하기보다는 남자들 틈에서 죽어가는 만삭여군이 없도록 처우를 개선해주는 것이 민주국가 지도자가 할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국민은 여장군 국가원수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